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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廉恥)를 아는 자의 길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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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0: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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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극장 개봉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영화 <동주>를 지난 광복절에 TV를 통해 보았다. 영화 말미에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원작 시에서는 시인이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 그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그 내면을 노래하였으나 영화에서는 사촌형 송몽규가 체포되는 상황에서 주인공 윤동주의 목소리로 이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시적 화자와 객체 사이에 해석상의 오해를 남길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사와 시인의 모호한 경계에 선 윤동주 자신의 내적 갈등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이해된다.

영화에서는 윤동주가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시인이 되고자 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허위 진술조서에 서명하라는 일본 형사의 강요를 끝내 거부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윤동주의 내면을 괴롭혔던 투사와 시인의 정체성의 불화는 이렇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표출을 통해 합일에 이르고, 그는 비로소 죽음을 넘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영원히 우리 마음에 존재하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컬어 염치(廉恥)라 한다. 염치를 안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아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고,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옳음[義]의 극치라고 하였다.

염치를 아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포스트모던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자주 염치를 잊고 살아간다.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아는 체면과 염치를 정작 사회의 리더들은 잊고 지내온 지 오랜 듯 별의별 갑질을 다 자행하고 있으니 몰염치의 실존들이 살아가는 몰염치의 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우리 시에 있는 보건대의 상황이 몹시 어렵다. 환난의 원인 제공자는 따로 있는데, 애꿎은 교수들과 학생들만 아픔과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피해자인 대학의 구성원을 보호하고 지원해주기는커녕 죗값을 대신 치르라고 목을 조르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부에서는 자신들이 선임한 임시이사들에게 학교를 안정시켜 정상 체제로 회복시키도록 주문해 놓고서는, 횡령액이 환수될 때까지 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을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종국에는 학교 문을 닫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교육부에서 임시이사를 동원하여 유출된 교비를 적극적으로 환수해서 학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인데, 지금 형편을 보면 마치 학생들을 볼모로 대학과 힘겨루기를 하는 듯하니 몹시 가슴이 아프다.

보다 못한 지역사회에서도 대학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시와 시의회에서 대학 존속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국회에서도 지역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되니,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염치에 민감해야 하는 것은 대학사회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지역사회로부터 대학을 지키기 위한 성원을 받고자 한다면 대학 역시 지역의 성원을 장래 갚아야 할 사랑의 채무로 여기고, 대학을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구조개혁을 통해 대학의 자기 생존력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호응해야 한다. 이것이 염치를 알고 보은을 생각하는 지성인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자꾸 꼬여가는 난국의 실타래를 풀지 못해 좌절한 어떤 교수는 스스로를 교수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며 사직을 청하기도 하고, 어떤 교수는 그 부끄러움을 씻기 위해 학생들 지도에 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부끄러움을 알았기에 진술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 영화 속 윤동주나 독립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거짓 진술서에 서명하고 죽음을 택한 송몽규는 비록 선택의 길은 달랐지만 모두 부끄러움을 아는 참 의인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주어진 교수 직분에 비추어 그 어떤 결단을 내리든지 모두가 용기 있고 염치를 아는 자의 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물러가는 자나 머무는 자가 거취의 표상은 다를지라도 심중의 본질은 오직 학생들만을 향해야 한다. 그들의 결단이 자신에게 맡겨진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결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염치없는 스승이라는 수치(羞恥)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형벌에서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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