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하는 일이지 다리 떨릴 때 하는 일이 아니다.’ 이 말에 충실해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비행편을 알아보고 기차표를 예매한다. 숙소는 현지 도착 후 정한다. 여행의 거의 모든 목적지는 중국이다. 수십 번 다닌 나라지만 아직도 가볼 곳이 많다. 같은 도시라도 계절마다 새롭고 밤낮으로 다르다. 체류기간을 최대한 길게 하고 일정을 조율한다. 빡빡한 일정은 아니지만 꽉 찬 여행이 되도록 준비한다. 현지인과의 만남이 우선이고 먹고 자는 것은 다음이다. 여행은 유람이나 관광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일도 포함되어 있고 목적 외 활동들도 포함된다. 나는 일, 특히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인터뷰 하고 글 쓰는 일에 여행목적을 둔다.

 

목적지는 정주(郑州)다. 매년 서너 번 다니는 중국이지만 정주는 갈일이 거의 없다. 만일 들를 일이 있다면 개봉(소림사)이나 낙양(용문석굴), 허창을 갈 때 지나가는 정도다. 12년 전, 4년 전, 1년 전에도 그랬다. 이런 정주에 지인이 살고 있다. 덕분에 9월 12일 하루, 열 시간 동안 비행기, 지하철, 고속철도, 택시를 연이어 탔다. 모든 수고는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나의 땀은 우리 돈 15만원이면 충분했다.

 

이번 여행은 계획된 것이 아니다. 일정은 기본 3주 + ∝다. 시간으로 보면 매 순간 책 읽기와 글쓰기가 가능하다. 여행 목적에 충실하고자 24인치 캐리어에 책과 문서를 가득 채웠다. 『영혼의 식사』(위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최재천), 『글쓰기의 힘』(공저), 『보통사람의 글쓰기』(이준기),『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여행자의 글쓰기』(정숙영), 『여행작가 바이블』(조명화), 『나는 어떻게 쓰는가』(씨네21),『코스모스』(칼 세이건), 『기사작성 워크북』(연국희), 『우리말 유의어 대사전』(낱말), 강준만 · 권석천 · 권아람 칼럼집, 시나리오 세 편이 그것들이다. 더 채우고 싶어도 캐리어 용량이 허락지 않는다. 더 읽을거리는 노트북에 옮겨 담았다. 귀국길에 대부분 책들은 중국인이 가지거나 묵었던 숙소에 두게 될 것이다. 옷은 청바지 하나면 충분하다. 매번 그렇듯 양말이나 수건은 버릴 것이고 나머지는 현지조달이다.

 

정주(郑州)는 우리나라 도시와 비교하자면 대전 같은 도시다. 중국 내륙으로 향하는 모든 기차는 이곳을 통한다. 인근 도시는 개봉(开封)과 낙양(洛阳)이다. 위치를 알고 싶다면 휴대폰에 ‘중국 정주’ 또는 정저우를 입력해 보시라. 기차 길과 고속도로가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하남성(河南城) 정주는 볼 것이 별로 없다. 유학생이나 현지인에게 물어봐도 같은 말이다. 기후는 우리와 비슷하다. 관광지는 아니다. 인구 1천만이 조금 넘는 건조하고 메마른 도시다. 신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물류중심 도시다. 공산품과 농산품 등이 이곳으로 모여 전국으로 보내진다. 정책적으로 철도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도 정주를 중심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중국에서 제일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이다.

 

하남성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나쁘다. 하남사람을 중국어로 ‘허난런’이라 한다. 중국 전역에서 허난런하면 사귀기를 꺼려한다. 사기꾼이 많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잘 하고, 약삭빠르며 남을 믿지 않는다는 평판이다. 그래서 거리를 둔다. 과거 광동성의 한 기업이 하남성 사람을 뽑지 않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을 정도다. 나의 경우 대도시에서 발 마사지를 받을 때 그들의 고향을 물어보면 하남이나 동북3성(길림· 요녕· 흑룡강성)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도시로 오면 이들에게 관대한 중국인은 거의 없다. 프랑스 칼럼니스트인 기소르망(『중국이라는 거짓말』(2006, 문학세계사))과 ‘뉴요커’지 기자인 에반 오스노스(『야망의 시대』(2015, 열린책들))는 그들의 책에서 하남성을 어둡게 묘사했다. 에이즈, 낙태, 매혈(賣血)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정주는 회면(烩面)이 유명하다. 납작하고 넓은 면 요리다. 국물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면뿐만 아니라 빵 종류도 넣어 먹는데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역사가 1,300년이다. 회(燴)는 모아 끓일 ‘회’자다. 모아 끓였다는 뜻이다. 회족(回族) 음식은 쌀과 면이 위주다. 소, 양, 낙타를 즐겨 먹었고 이를 바탕으로 회면이 등장했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소나 양고기로 국물을 우려낸다. 회족 집단 거주지가 있는 서안에 가면 길거리 곳곳에 이를 끓이는 솥이 걸려 있다. 이런 회면이 전국으로 퍼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를 세운 이세민이 황제가 되기 전 일이다. 추운 겨울, 피난 중이던 그는 심한 감기에 걸려 잠시 회족 모자(母子) 농가에 머물렀다. 이들은 기르던 가축을 잡고 푹 고아 이세민에게 면요리를 대접했다. 황제가 된 그는 다른 어떤 음식보다 회면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을 보내 모자에게 요리법을 알아내어 궁중음식으로 정착시켰다. 이후 회면이 민간에 전해졌고 전 국민이 좋아하는 지금의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회족은 이슬람교 율법에 따라 식당에서 술 종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서안에 갔을 때 일이다. 일행과 함께 유명한 회족식당에 들렀다. 메뉴에 음료수는 있었지만 술이 없었다. 시원한 맥주가 필요했던 나는, 가게 옆 매점에서 맥주를 사왔다. 이를 본 사장이 내게 오더니 ‘우리 가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다. 가게 방침인 줄로만 알았다. 결국 몰래 마시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음식만 먹었다. 먹는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어쨌든 정주가 음식 말고는 볼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주는 한국 사람을 보기 힘들다. 한국 교민이 400여명에 불과하다. 최근엔 사드 여파로 일부 운영 중이던 한식당도 거의 문을 닫았다. 어느 작은 가게 점주는 손글씨로 초코파이 상자 위에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국가 이익을 위해 롯데제품을 보이콧하고 (한국) 오리온 제품을 철수한다!’ 시내 중심부에 카페베네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간판만 남고 내부는 정리 중이었다. 중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정치문제는 수익과 연결된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국가가 개입한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인민일보와 함께 대표적 보수신문 중 하나인 환구시보 논조를 보면 중국정부의 입장을 알 수 있다. 사드여파로 중국에서 장사하는 한국 상인은 피해의 직접적 당사자다. 환구시보가 다시 김치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정주는 중국 여느 지역들처럼 도시가 확장되면서 여기저기 공사판이다. 아침부터 살수차가 분주하다. 새벽에도 물을 뿌려댄다. 황하 강이 지나가는 곳이라 황토가 날리기도 한다. 시내 중심부는 30층 이상의 큰 건물들로 메워져 있다. 특정기업이 큰 건물 6개를 이어놓고 영업을 하기도 한다. 첫 건물에서 마지막 건물까지 1시간 걸음이다. 큰 아파트 단지 일곱 개를 통과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학교들은 중심부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용자호수(龍子湖)’근처로 옮겨 거대한 대학촌이 형성됐다.

 

내륙에 있는 도시들은 기본역사가 수천 년이다. 황하강 남쪽에 위치한 정주도 3,500년이 넘었다. 사람들은 북경과 상해를 비교하는데 나는 서부와 동부를 비교한다. 서부도시는 오래되었다. 여유도 있고 도시가 정체된 느낌이다. 사람들이 느긋하다. 상해를 가보고 내륙으로 간 여행객들은 우리의 70년대를 떠올릴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뭐라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화장실 문화만 봐도 관광객들은 혀를 내두른다. 관광지는 깨끗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상황은 돌변한다. 칸이 막아져 있어도 외부에서 볼일 보는 장면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당황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남교육대학(河南敎育大學)에 숙소를 잡았다. 오랫동안 머물 곳이다.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주변을 돌아본다. 중국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신입생들이 기숙사로 짐을 분주히 나른다. 학교입구에서 자동차 진입을 차단하기 때문에 신입생의 짐은 온전히 당사자 몫이다. 학생들이 식당에 꽉 들어찼고, 복사실과 사진인화실이 분주하다. 목욕탕과 매점은 일상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학생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에 섞여 있으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은 ‘역시 중국인은 시끄럽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비 오는 날 전화 부스에서 애인과 통화하는 중국여성의 목소리는 아름답다’는 교수님의 말을 난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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