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사람들과 함께라면 힘들 일이 뭐가 있겠어!

광양읍 우산리 내우마을 서문식 이장님

며칠 비가 내리더니 때늦은 더위가 샘을 낸다. 늦더위와 함께 시골이라 하기에는 읍과 맞닿아 있고, 도시인가 하기에는 아직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우마을로 향했다.

동천과 서천 사이에는 소가 앉아있는 형상을 닮은 내우산이 있다. 내우(內牛)마을은 내우산 중에서도 소의 배 쪽에 자리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마을은 우산리 중에서 가장 큰 부락으로 90여 가구, 250여명의 인구수를 자랑한다.

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자 오래전 당산제를 지내던 노거수와 정자나무들이 반긴다. 뒤로는 내우산이 모진 바람을 막아주고 앞에서는 8그루의 정자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니 내우마을은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8그루의 정자나무를 지닌 마을은 아마 전국에서도 흔치 않으리라.

마을로 들어서니 서문식 이장(68)이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했다. 서 이장의 첫인상은 마치 곧은 성품의 선비 같았다. 서 이장은 11년째 이장직을 맡아 마을 일에 힘쓰고 있으며 올해는 광양읍 이장단협의회 회장도 맡게 돼 안팎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래 내우마을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왔다. 서 이장은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몸을 정갈하게 하고 매사에 근신해야 하는데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어요”라며 “그래서 2002년인가 마지막 당산제를 지내고 더 이상 안하게 됐지”라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또한 서문식 이장은 마을 입구 비석을 가리키며 “지금은 사라졌지만 큰 우물이 있었어요. 그 역사를 꼭 기억하고 싶어서 우물의 사각방벽을 파내 마을 입구 비석 주춧돌로 만들어 보존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서 이장과 마을 어르신이 모여 건배를 하고 있다.

서 이장은 시대가 변하며 마을의 역사가 하나 둘씩 사라짐이 늘 안타깝다. 자신이 자라온 마을이 하나 둘씩 변해간다는 것, 자신과 이웃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 서 이장은 한동안 말없이 노거수를 바라봤다.

서 이장은 마을의 자랑거리로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청년회’와 ‘부녀회’를 꼽았다. 해마다 청년회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준비하고, 부녀회는 경로관광을 책임지고 있다. 서 이장은 “젊은 친구들이 괜히 삐뚤어지지 않고 화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청년회와 부녀회가 열심히 일을 해주는 덕분에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마을 일의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렸다.

설마 11년간 이장직을 수행해오면서 힘든 일 하나 없었을까? 서 이장은 끈질긴 질문에도 “마을 사람들이 화목하게 서로 잘 돕는데 힘들 일이 대체 뭐가 있겠어”라며 허허 웃기만 한다. 서 이장의 미소에서 그가 얼마나 마을을 사랑하고 주민들을 위하는지 그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문식 이장은 “마을의 소득원인 고구마 줄기를 활용한 사업을 고심 중이다”며 “부녀회랑 많은 회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을을 위해 내가 이장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해내고 싶어요”라며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또한 “저 윗마을에 주차장이 있는데 거기 포장도 꼭 됐으면 좋겠네요”라고 덧붙였다.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잠시 정자나무의 그늘에 앉아본다. 나뭇잎을 뚫고 내리쬐는 햇빛이 따스하다.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싶다는 마음을 뒤로 하고 내우마을을 떠났다.

96세 어르신도 정정하게 산책하는 마을. 마을 어르신 모두가 연세에 비해 10년, 20년도 더 젊게 보이는 마을. 그분들의 끈끈한 정이 돌아가는 마음을 따듯하게 해준다.

 

사진 하민정 편집기자

글 이정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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