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사람, 아이디어가 세계적 관광지로!
한 시간 4명이 지나는 거리

일본 시가현 나가하마시는 인구 6만여 명이 거주하는 소도시지만 일본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첫 거성을 세워 자신의 입지를 다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의미는 이후 설명하겠지만 도시재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에는 구로가베 스퀘어라는 한 해 평균 200만 명이 넘게 찾는 오래된 상권이 있다. 그리고 구로가베 스퀘어는 일본에서도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도시재생 사례라고하면 이면에는 지금은 넘쳐나는 관광객과 볼거리 가득한 이곳도 과거 극심한 공동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가 있다.

구로카베 비영리법인에서 활동하는 히로코 야마자키 촌장에 따르면, 공동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한 시간 동안 사람 네 명, 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그러나 현재는 관광객은 물론 일본 국내와 해외에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명소가 됐다. 이곳을 찾은 국내외 언론사만 480여 곳으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찾는 빈도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 구로카베 스퀘어의 대표적 건물 유리공예관

구로카베의 흥망성쇠

157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가하마 성을 짓고 성 아래에는 상공업자, 신사, 절 등을 옮겨온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하는 한편 자치권을 부여한다.

또한 도요토미는 아들이 태어나자 성 아래 사는 주민들에게 금전을 내리는 등 은혜를 베푼다. 이에 감동 받은 주민들은 아들이 태어난 것을 기리고 성주에게 감사를 표하는 뜻에서 12기의 축제용 수레를 만들어 매년 축제를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가하마 히키야마 축제로 불리는 행사는 400여년을 내려온다. 나가하마의 자랑거리인 이 축제는 쿠로가베의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축제를 치러 왔으며,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 일본이 고도로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상권은 붕괴되고 그 자리를 대형쇼핑몰이 채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축제를 치를 수 있는 비용 마련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큰 도로가 만들어 졌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이 들어섰으며, 400여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던 구로카베 상인들도 차츰 거점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자동차 문화도 한 몫을 차지했다. 가까운 시장 또는 상가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쇼핑몰로 이동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구로카베 거리의 빈 상가는 점차 늘어갔고, 급기야 400여년을 이어온 히키야마 축제를 이어갈 수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는 듯 했다.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

그 때쯤, 구로카베 거리 내 있는 천주교 예배당으로 쓰이는 건물이 매물로 나온다. 이곳은 원래 1900년에 은행을 지어진 건물인데, 은행이 철수하고 천주교 예배당으로 쓰였다. 하지만 당시 상권이 몰락하자 예배당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 유리공예관 내부

건물가격은 1억(약 10억 원)엔 정도였는데,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았다. 8명에서 9000엔을 건물을 매입하는데 내놨으며, 나가하마시 역시 4000엔을 보탰다.

이렇게 개인과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사들이지만 건물은 이제 활용이 문제였다.

사들인 예배당을 활용해 그들의 자부심인 축제를 매년 이어갈 수 있는 자본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자자를 중심으로 비영리활동법인(NPO)를 구성하고 ‘국제성‧역사성‧문화예술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키로 했다. 그리고 수차례 논의 끝에 예배당에는 ‘유리공예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이곳은 전통적으로 비단을 이용한 기모노 생산이 유명한 고장이었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유리공예를 택한 것이다.

히로코 촌장은 이에 대해 “전통적으로 제품 생산과 경쟁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여성이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특별한 유리공예 선정함으로써 나가하마 지역 외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은행은 현재 쿠로가베 1호점이 비영리단체에서 직접 관할하는 쿠로가베 1호점면서 나가하마를 대표하는 유리공예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한해 평균 220만 명 다녀가

유리공예가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대형쇼핑몰도 쇠락해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구로카베 거리를 떠나갔던 상인들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 구로카베 스퀘어

이에 따라 구로카베 비영리활동법인도 유리공예관을 시작으로 빈 상가를 사들이거나 임대받아 레스토랑, 커피숍 등 이곳을 찾은 이들의 편의를 위한 구로카베 10호점까지 자체적으로 문을 열었다. 자산 규모도 3억 엔 늘어난 4만 4000엔으로, 민간자본만 3억 엔이 투자돼 있다.

구로카베 10호점에서 20호점까지도 주목해 볼만 하다. 비영리법인에서 선정하지만 운영하거나 관여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프랜차이즈 같은 역할을 하지만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비영리법인과의 수익의 분배도 전혀 없다.

다만 비영리법인에서는 구로카베라는 상호를 사용하기 위해 입점에 대해 상당히 까다로운 요건을 제시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 관광객이 한 번쯤 들릴 수 있는 상점에 한해서만 구로카베라는 이름을 허락한다. 철저히 관광을 위한 전략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 이 작은 거리를 찾는 관광객은 앞서 언급 한 것처럼 연평균 22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전통 축제 역시 전국적인 명성을 갖게 됐다.

지방정부의 도움 없는 운영

그러나 더욱 눈에 띠는 것은 비영리법인과 축제의 운영 방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공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이런 대규모 축제를 치르고 1년 내내 비영리법인을 운영한다.

어떻게 이런 대규모 행사와 공공성을 띤 조직이 지방정부의 도움 없이 운영될 수 있을까?

그것은 축제 비용에 대한 갹출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 특유의 공동체 문화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 구로카베 NPO 사무실

구로카베 스퀘어에 입점한 상인들은 축제 경비에 대한 분담을 당연하게 여긴다. 과거 조상들이 이 마을을 있게 한 그리고 은혜를 베푼 성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것은 자신들이 존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은 이 축제에 적은 비용을 부담하지만 그에 따를 수익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축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에 반해 비영리법인 운영은 다른 양상이다. 한 해 사무실 임대료 및 직원 채용으로 인해 1200엔이나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 비용은 직접 조달하고 있다.

먼저 각 업체를 소개하는 전단을 만들면서 홍보비로 상점에서 600엔 정도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나머지 비용은 직영으로 운영하는 상점에서 일부 부담한다.

특이한 점은 선진사례로 일본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면 이곳을 견학하거나 취재가 끊이지 않는데 1회 1만 엔(약 10만원) 정도의 사례금을 받는다. 이 금액도 한 해 120만 엔에 이른다는게 히로코 촌장의 설명이다.

이렇게 자체적으로 구로카베 스퀘어를 운영하다보니 지방정부의 지원은 크게 필요치 않다. 당연히 운영에 자율성이 보장되며, 이에 따라 비영리법인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구로카베의 고민

그렇지만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구로카베 스퀘어를 지금과 같이 이어나갈 수 있는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대체적인 현장이지만 중심시가지 거주인구가 현재 감소하고 있고, 고령자의 비율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지역의 젊은이들 특히 여성인구가 이탈하고 있으며, 대규모 상업의 집적개발은 여전히 구로카베 스퀘어의 위협요소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비영리법인 요시이 시게히토 이사장은 “도시정비(재생)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으로 시민 전체가 공통을 갖는 꿈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그것에 거주한다는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때에 진정한 도시재생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