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가족은 마을의 '재간둥이'

민족 대명절 한가위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사람들은 유래 없이 긴 연휴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즐기려 한다. 백운저수지를 지나 서천을 따라 달리다보니 시원한 가을바람이 차창을 넘어 들어온다. 영원한 동반자 막걸리와 함께 이번에는 구서마을로 향했다.

봉강면 구서리 구서마을 이종만 이장님

구서마을은 서당이 있었다 해서 갖출 구(具)자에 책 서(書)자를 써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처음에는 둔촌(屯村)이라고 했는데, 후에 구석동(九錫洞)이라 개칭했다가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 구서마을은 예부터 ‘구서원(具書院)’, ‘구서골’ 또는 ‘구서’라 전해져 왔다. 이전에는 100명이 넘는 인원수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40여 명의 주민, 30여 가구 수의 소규모 마을이 됐다.

구서마을은 오래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담 밖으로 감나무의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돌을 쌓아 만든 옛 벽들이 마을 곳곳을 시간여행을 하듯 만들어준다. 마을은 주로 키위, 감, 밤 등의 특작물과 벼농사로 주 소득을 올린다.

마을 뒷산에서 내려다본 구서마을전경.

마을에 도착해 질문할 것 들을 정리하는 중에 누군가 차창을 두드린다. 돌아보니 이종만 이장(40)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얼른 막걸리를 마을회관에 들여놓고 이종만 이장의 손을 잡고서 마을을 거닐었다.

이 이장은 읍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하다가 고향인 구서마을로 귀농한지 8년차다. 이 이장은 부모님과 이 이장 부부,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등학교 4학년 이승진 양과 이제 막 태어난 지 16개월인 이효진 양, 이렇게 3대가 모여 산다. 아내분인 강희진(39)씨와는 중매로 만나 결혼하자마자 첫 딸인 이효진 양을 낳았다. 그러나 그 후에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이 이장 부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 끝에 9년 터울의 둘째 딸 이효진 양을 얻었다. 이 이장은 “첫째가 둘째를 질투해서 다시 아기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그래요”라며 딸들 자랑을 한참동안 늘어놓았다.

이 이장은 “노인복지관의 지원을 받아서 한 달에 두어 번 마을 청소를 해요”라며 “또 마을 사람들끼리 그냥 모이고 싶은 날 마을회관에 모여 전도 지져먹고, 가끔씩 영화 관람도 하러 가구요”라고 마을 사람들의 단합을 자랑했다.

을 쌓아만든 벽들이 옛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 이장의 일과는 매일 일어나 과수원과 농장 일을 하고, 매주 월‧수‧금 봉강면 자율방범대 사무국장직을 맡아 방범 활동을 7년째 이어어고 있다. 평소에 마을 어르신들의 자질구레한 기계들을 매번 고쳐주는 ‘맥가이버’ 이종만 이장은 그럼에도 딸들을 위해 늘 주말을 비워두는 편이다. 이 이장은 “평소에는 회의나 마을 일과 방범일 때문에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지를 못하니까 주말이라도 꼭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하죠”라고 말했다.

이 이장의 가족은 마을의 재간둥이다. 이종만 이장은 마을의 심부름꾼으로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이장 3개월차 새내기다. 게다가 아내인 강희진씨는 젊었을 때 했던 미용 일을 살려 마을 어르신들의 머리손질을 담당한다. 또한 이 이장의 두 딸은 마을의 유일한 어린 아이들이라 아내와 이 이장의 손을 잡고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마을회관을 찾으면 방긋 웃는 얼굴만으로도 어르신들의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탐스러운 키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종만 이장은 “마을 경로당이 지어진 지 20년이 지나 많이 노후화됐어요. 어르신들이 넘나들기에 문턱도 높고, 문도 제대로 안닫히구요”라며 “시장에게 건의도 했지만 한두 푼 드는 문제도 아니라서 당장 해결이 안 되니 그게 좀 답답하네요”라고 오래된 마을회관에 대한 걱정을 꺼냈다. 또한 “마을회관 2층은 방송실 빼고는 지금은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어요. 2층은 제외하더라도 1층 식당 방이랑 문턱이라도 개선이 됐으면 좋겠네요”라고 덧붙였다.

취재기자는 구서마을을 떠나며 생각해본다. 오래된 마을,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얼마 남지 않은 주민들… 그럼에도 이종만 이장은 “내 뿌리는 봉강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는 한 구서마을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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