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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남기고 간 문명금 할머니를 위하여정은영 광양시민신문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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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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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광양시민신문 독자위원장

“아버지, 어머니! 셋째 명금이 왔소. 얼마나 기다리셨소.”

설날 아침. 진상면 황죽리 선산의 부모 묘소 앞에 엎드려 울며 아버지 어머니를 목 놓아 부르는 팔순의 할머니가 있다. 왜소한 어깨를 들썩이며 자글자글한 볼가의 주름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길게 멈추지 않았다. 64년 전 떠났던 꿈에 그리던 고향 땅에 그녀가 왔다.

문명금은 1917년 6월 19일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에서 태어났다. 누런 용이 살고 있다는 유래에서 ‘황리’라 불리던 마을은 뒤로 억불봉이 촛대처럼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 어치 계곡 맑은 물이 사철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머슴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둘,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집안 살림은 늘 곤궁했지만 가족들 애틋하게 보살피는 어머니 품에서 동생들, 또래들과 함께 산과 들을 뛰놀며 자랐다.

1935년 18살 되던 해, 아구사리꽃 노랗게 피어난 봄날이었다. 명금은 친구들과 집을 나서 느랭이재를 넘고 섬진강을 건너 하동 장에 놀러 나간다. 18세 소녀들에게 봄날 장터에 나온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다. 한참 넋을 놓고 장에 나온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일본 사람들 서넛이 걸어온다. 그들은 소녀들 앞에 멈추어 서더니 능숙한 언변으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명금은 잠시 생각했다. 매일 밤낮으로 남의 집 살림 돌보느라 손이 부르터라 고생하는 부모님과 항상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물배를 채우기 일쑤인 동생들이 그림처럼 머리에 스쳐 지났다. 힘들어도 내가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 가족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만이 명금이 할 수 있는 가족들을 위함이었다.

산골에서 자라나 순박하기만 하던 명금과 친구들은 그들의 말을 믿고 차에 올랐고, 부산을 거쳐 중국의 손오현까지 끌려가게 되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짐승으로 돌변하여 폭력을 행사하며 꽃다운 소녀들을 강압했다. 이층집으로 만들어진 군인회관(위안소)에서 그녀는 처음에는 에이꼬, 후에는 노부꼬라는 이름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에 20~30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그 참혹했던 시간이 일본의 패망까지 10년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들을 데리고 떠날 때 그녀는 혼자서 도망쳐 근처의 조선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찾아간다. 거기서 버려진 삶을 지탱하다 1998년 혜진 스님 등 조사단의 방문 시 생존 사실이 국내에 알려 진다. 이듬해 나눔의 집 주선으로 그녀는 82세의 나이에 고향을 방문한다. 그리고 부모의 산소 앞에 앉아 그간의 참혹했던 회한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지역 광양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준비위원회가 80여 단체의 참여로 구성되어 활동이 활발하다. 소녀상 건립에 대해 대체로 동참하는 분위기지만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전국에 똑같은 소녀상을 지역마다 마치 형식적 이벤트처럼 많은 돈을 들어 세워야 하는지 회의적 시각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평화의 소녀상’은 똑같지 않다. 정치적 수사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역마다 모금에 의해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은 그 지역마다의 사연이 담고 있고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 한명 한명의 피맺힌 슬픔과 눈물을 간직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며 우리는 우리의 지나온 삶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누이 문명금을 추모하며 수많은 소녀들의 아픔을 함께하여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권리가 소녀들에게 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누려야 할 평화가 할머니들과 후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한다.

※ 글 내용 중 문명금 할머니에 대한 부분은 할머니의 약력을 풀어서 재구성 한 것입니다. 문명금 할머니는 1997년 7월 3일 영구 귀국하여 ‘나눔의 집’에 사시다 정부에서 받은 생활지원금 4,300만원 전액을 베트남 전쟁피해자를 위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에 기부하시고 2000. 11.3일 한 많은 삶을 마치고 평화나비가 되어 소천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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