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영동 미호 방앗간의 바쁜 하루

광영동 시장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미호 방앗간. 외할머니 집을 찾은 것처럼 푸근함이 먼저 반기는 곳. 주·야가 적힌 낡은 간판은 미호 방앗간의 17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높이 솟은 굴뚝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만 피어오르는 연기가 시장의 고즈넉함과 잘 버무려져 담백한 풍경이 된다.

2000년 3월에 문을 연 미호 방앗간은 올해로 17년이 됐다. 방앗간이 제일 바쁠 때는 설 그리고 추석 전인 지금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마자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한켠에선 한창 기름을 짜는 중이다. 방앗간 주인인 서도수(67)씨는 깨 볶기에 여념이 없다.

사뭇 달라진 방앗간 풍경

한 때 방앗간 기계들은 쉴 틈이 없었다. 인절미, 찹쌀떡 등 떡을 만들고, 고추도 빻고, 기름도 짜주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떡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주로 기름을 짜고 고추를 빻아주는 일만 한다.

고소한 깨볶는 냄새가 발길을 머물게 하는 미호 방앗간.

바쁘지 않아도 괜찮다. 참기름 한 병, 고추 한 되만 빻아도 방앗간 문을 여는 의미는 충분하다.
방앗간 주인인 서도수 씨는 “지금이 제일 바빠. 깨 볶아야지, 고추 빻아야지. 요즘 아가씨들은 이런 고추는 처음 보나?”라며 묻는다.

가장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깨 볶기'

요즘 아가씨라는 말에 세월의 벽을 체감한다. 서도수 주인장은 깨를 볶기 전 깨를 수차례 씻고 또 씼는다. 서 주인장은 “사람 입으로 바로 들어가는 건데, 깨끗한 게 가장 중요한거지”라며 “조금 번거롭긴 해도 이렇게 해야 내 마음도 편하고 단골들한테도 안 미안하고”라고 깨 씻기를 반복했다.

깨끗하게 씻은 참깨는 물기를 뺀다. 물기가 빠지면 통에 넣고 볶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참을 볶는다. 먹기에는 쉬어도 먹기까지의 과정은 보통 일이 아니다. 너무 센 불도, 약한 불도 안된다.

“지름(기름)짜는거 보고가야제”
둥근 철 원형 통에 얇은 습자지를 두른다. 볶은 깨를 넣고 기계를 가동시킨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면 곧이어 한 방울 한 방울 기름이 떨어진다.

방앗간 단골손님과 주인장(맨오른쪽).

한 방울의 기름은 엄청난 압력으로부터

한 방울의 참기름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1㎠를 600㎏으로 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필요하다. 어릴 적, 흰 쌀밥 위로 날계란을 톡 떨어뜨리고 간장과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비벼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입맛 없던 한여름 밤, 찬밥에 잘 익은 열무김치를 송송 썰어 그 위로 빨간 고추장과 마지막 피날레로 장식을 했던 참기름의 추억은 또 어떤가. 비비고 볶는데 빠지면 서운했던 참기름의 존재는 정말 특별하다.

작은 구멍으로 기름이 졸졸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깔때기를 이용해 다 짜진 기름을 유리병에 담는 서 주인장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하다.

서 주인장은 “고소한 냄새가 좋제? 이 맛에 내가 방앗간을 하는거지”라며 웃어보였다. 서 주인장이 한참 깨를 볶고 있자, 단골손님이 하나 둘 방앗간으로 들어온다. 추석을 맞아 자녀들에게 선물할 깨와 참기름을 사가는 손님들, 김장을 위해 고추를 빻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 손님은 “미호 방앗간 참기름이 제일 고소해”라며 “매번 명절이면 이 집에만 온다”며 칭찬했다. 깨 볶는 냄새로 진동하는 미호 방앗간. 오늘도 미호 방앗간에는 고소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고운 빛깔을 뽐내는 참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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