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떨어져있어도 언젠가 모두 함께

골약동 성황마을 정형기 이장님

추석연휴가 끝나고 비가 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 잡았다. 재개발이 시작된 마을 곳곳은 공사가 한창이다. 곳곳의 건물이 무너지고 폐허처럼 자리 잡은 흔적들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쓸쓸해 보인다. 이번엔 대부분의 주민들이 떠나고 몇몇 어르신만 남아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성황마을 정형기 이장을 찾았다.

성황마을은 옛날 성황묘(城隍廟) 즉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이 있어 성황(城隍)이라 한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서낭당‧서낭쟁이‧서낭댕이 라고도 불렸다. 옛 성황마을이 있던 구역은 성황‧도이지구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새로운 정주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이 진행 중인 곳 중 한 곳이다.

막걸리 한잔이 이들의 씁쓸한 마음을 달래주길 바라며 정 이장의 집에 도착하자 정 이장과 마을 어르신 두 분이 반긴다. 거실에 앉아 땅콩 껍질을 까고 있던 정 이장의 아내가 달달한 배와 새우를 넣은 애호박무침을 안주거리로 내왔다. 정 이장과 어르신들은 사진을 찍기도 전에 그새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잔씩들 쭈욱 들이켰다.

정형기 이장과 마을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정 이장은 “한때 우리 마을은 한 75가구에 주민들도 200여 명이 넘었지. 근데 재개발되면서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11명 정도만 성황마을을 지키고 있어”라며 “타지에서 또 넘어온 사람들 해서 지금은 한 20여 가구 돼지”라고 말했다.

정 이장은 “다들 흩어지고 영 쓸쓸해. 우리 마을은 서로 다툼 하나 없이 화목하게 지냈는데 자주 못 만나니까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지”라며 또 한잔의 막걸리를 들이켰다.

정 이장은 지난 2003년도에 이장직을 처음 수행하면서 지금은 허물어졌지만 마을회관을 새로 설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6년 구봉산 주변을 예초작업하고 내려오다 그만 차량이 전복돼는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정 이장을 포함해 8명이 크게 다쳤으나 다행히 생명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성황마을회관은 쓸쓸히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이장직을 수행한지 5년차인 정 이장은 “마을회관을 새로 지을 때 정말 기뻤지. 그때가 가장 보람됐어. 근데 그 사고로 허리가 부러져서 병원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이장직을 할 수가 없었지. 그래도 죽은 사람 하나 없어서 너무 다행이야”라고 그때의 사건을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마을에 바라는 것이 있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정형기 이장은 “나는 다른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냥 재개발 잘 되고 마을이 새롭게 형성되면 우리 마을 사람들 전부 돌아와서 오순도순 사는 거 그거 하나 꿈이야”라고 말했다.

성황나무가 철거중인 마을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성황마을 주민들 몇은 중마동과 광양읍에 새로 자리 잡고, 또 몇은 다른 도시에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매년 두 번 친목계로 만난다. 오랜만에 만나서 다 같이 식사도 하고 또 종종 관광도 간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주민들은 늘 서로를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한다.

이전 성황마을 주민들이 새롭게 자리 잡은 마을은 아직은 마을 사람이 별로 없고 대부분 집을 짓고 있는 상황이라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취재기자는 성황마을을 벗어나며 정형기 이장님의 꿈이, 마을 주민 모두 다시 모여 다 같이 살길 바라는 그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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