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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담긴 민주 정신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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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6  08: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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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훈민정음 28글자를 만들고(세종25년 1443년), 글자의 모양과 소리와 용례 등을 설명하여 같은 이름으로 <훈민정음>이라는 해설서를 출간했다(세종28년, 1446년). <훈민정음> 어제(御製) 서문에서 세종은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라고 한글 창제의 본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로부터 340여 년이 흐른 정조 때, 대사헌 홍양호(洪良浩)는 상소문에서 “오직 우리 세종대왕께서 하늘이 낸 예지로 혼자서 신기(神機)를 운용하여 창조하신 훈민정음은 곡진하고 미묘하게 된 것이다. 무릇 사방의 언어와 갖가지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모두 붓끝으로 그려 낼 수 있게 되는데, 비록 길거리의 아이들이나 항간의 아낙네들이라 하더라도 또한 능히 통하여 알 수 있다.”라며 당대의 한글 사용상을 언급하였다(정조실록 16권, 정조7년 7월 18일). 아이들도 자유롭게 쓸 정도로 쉽고 편리한 한글이 당시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실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1977년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의 순천김씨(順天金氏:1580년대 사망 추정)의 묘에서 여러 편의 한글 편지가 출토되었는데, 1560~1580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들에는 시집간 딸을 그리며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 첩을 들인 남편에 대한 아내의 미운 마음, 출타한 남편이 집안을 걱정하고 안부를 전하는 등 일상의 희로애락이 모두 한글로 적혀 있다. 한글이 창제된 지 불과 100년 남짓한 사이에 한글이 조선 민중의 언어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하고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넉넉히 헤아릴 수 있다.

예조판서 정인지가 <훈민정음> 서문에서 밝혔듯이 한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깨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 못 되어 배울 수 있는 쉬운 글자이면서 자연 미물의 소리까지 옮겨 적을 수 있을 정도로 표기 역량이 뛰어난 문자이다. 조선의 대중들은 한글을 사용하여 자신의 대소사를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어 ‘호모 비블로스’(기록하는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한글은 신분 귀천을 막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언어 민주화를 이루었고, 시민 민주주의로 가는 디딤돌로서의 정치적 도구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한글이 반포된 지 올해로 571년을 맞는다. 백성들의 언어생활을 편하게 하겠다는 세종의 마음이 인류 문화사에 길이 남을 문자를 발명하였고, 그 은덕을 후손인 우리가 지금까지 누리고 있다. IT강국,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한글은 정보 친화적 속성을 발휘함으로써 정보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의 구실까지 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나 한자어, 차별적이고 고압적인 표현이 들어 있는 공공문서들이 우리 손에 들려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편에서는 일부 계층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말법이 따로 있는 듯하다. 그 한 대목을 여기 옮겨본다. “사해행위취소의 소에서 수익자가 원상회복으로서 채권자 취소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가액배상을 할 경우, 수익자 자신이 사해행위취소소송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라는 이유로 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자기의 채권과 상계하거나 채무자에게 가액배상금 명목의 돈을 지급하였다는 점을 들어 채권자 취소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 대해 이를 가액배상에서 공제할 것을 주장할 수 없다.”(대법원 2017.8.21. 판례 중에서) 독자들은 이 예시글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1979년 영국에서는 한 노모녀가 정부로부터 난방보조금을 제공받을 수 있는 행정적 절차가 있었음에도, 어려운 행정용어 때문에 이를 알지 못해 복지 수당 신청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한파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크리시 메이어(Chrissie Maher) 여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을 시작했고, 마침내 1999년 영국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식적 법률용어와 라틴어 관용구 등을 없애는 영국 민법제도 개선을 이루어냈다.

영국의 쉬운 영어 운동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한글을 통해 문자가 사회적 계층 분리의 도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한 나라, 한 민족, 한 문화를 만들겠다는 평등과 민주의 이상이 한글 창제에 담긴 정신이 아닐까 싶다. 이 뜻을 되살려 글을 읽는 대상을 배려하고 글을 쓰는 목적과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더 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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