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힘차게 ‘별보기 운동’

추수가 한창인 수확기의 시골부락은 하루가 너무 바쁘다. 넓게 펼쳐진 논에 이른바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진상면 금이리 이천마을을 찾아 막걸리와 함께 아침햇살을 받으며 떠나본다. 이천마을을 도착하니 대봉감이 지천이다. 마을 뒤는 깃대봉 자락이 생기를 불어넣고, 마을 앞으로는 수어천 줄기가 힘차게 뻗어나간다. 고영조 이장님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취재기자를 반긴다.

이천마을 전경.

이천마을은 마을을 감싸며 돌고 있는 상이천과 하이천 사이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상이천을 백천마을, 하이천은 섬거장이 설치돼 ‘배나들이’, ‘배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두 마을을 합치는 과정에서 배들이‧백천의 첫 글자를 따서 배천이라 부르다가 한문식으로 쓰는 과정에서 배를 배나무 이(梨)로 보고 지금의 이천(梨川)마을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

“오후에 나락 비러 가야해서 하루가 너무 바빠”

정감 넘치는 구수한 사투리가 귀에 쏙쏙 박히는 고영조 이장은 올해 73세로 이른바 해방둥이 45년생이다. 올해로 13년차 배테랑 이장인 고 이장은 새마을지도자를 거쳐 광양제철 초기에 목수로 일을 하다 60세 때 그만두고 이장직을 시작했다.

진상면 금이리 이천마을 고영조 이장님.

고 이장은 “우리 마을은 터가 좋아 이사 오믄 다들 잘 살어. 성씨도 25개 엄청 다양한디 다툼하나 없어”라며 “저 우에 저수지서부터 이천고랑타고 물이 흘러온께 마을도 시원허고 깃대봉서부터 내려오는 물이 깨끗해서 시의 상수도는 거의 쓰도 안해”라고 마을 자랑을 시작했다. 또한 “나가 이장 시작헐때는 100가구도 넘었는디 인자 조금 줄었제. 지금은 79가구에 마을 사람들이 182명 정도여”라며 “부락민들끼리 화목하고 단합도 잘 흐고, 거그다 마을이 원체 깨끗해서 진상면 청년회가 모범부락으로 지정했당께”라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고영조 이장은 이장직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이 마을을 ‘금연마을’로 만드는 일이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살자고 금연마을부터 지정했제. 마을 입구에 전빵이 있었는디 아무도 담배도 안사고 헌께 지금은 없어져브렀어”라고 말했다. 고 이장은 “그래도 지금도 한명인가는 피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고 이장은 “부락에 할머니들이 많응께 포도시 나가 다 일을 해야돼. 비료 받아가라고 방송해도 잘 듣도 안허고 놔두면 또 못씅께 맨날 나꺼 트럭으로 다 날라다 주고 하제”라고 말하며 시골부락들이 대부분 그렇듯 남자 일손이 부족한 것을 가장 힘든 일로 꼽았다.

취재기자를 위해 직접 수기로 작성한 마을 자료.

고영조 이장의 하루는 너무 바쁘다. 매일 4천평의 논밭 농사를 지어야 하고, 제사상 음식들을 판매하는 진상고씨상회를 아내와 운영한다. 게다가 매일 하루에 2번씩 마을회관과 근처를 직접 청소하고, 마을일까지 다 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새벽 4시부터 시작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하루 일과를 고 이장은 ‘별보기 운동’이라고 말한다.

고 이장은 “부모님도 일찍 여의고 혼자서 참 고생 많이 했네. 허구헌날 새벽부텀 일하고 이 나이까지 쉰 날 한번 없어”라며 “왠종일 바빠 죽겄어서 이장직 자꾸 고만할라해도 부락민들이 막 이장을 시킨당께”라고 말해 마을 사람들의 무한한 신뢰를 짐작케 했다.

이장직을 수행하는 중에 꼭 이루고 싶은게 있냐는 질문에 고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게 당구대, 게이트 볼장 같은 시설들을 만들고 싶네”라고 말하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마을 위에 위치한 이천 저수지.

취나물꽃이 만발하고 마을 전체에 대봉감이 넘쳐나는 이천마을을 떠나며 고영조 이장의 ‘왠종일 바빠 죽겄어서 이장직 자꾸 고만할라해도 부락민들이 막 이장을 시킨당께’라는 한마디가 문득 떠올랐다.

언제나 당당하고 마을을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일꾼. 고영조 이장은 이천마을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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