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웃음소리는 골목을 돌고…

진상면사무소를 지나 도로를 따라 달리니 수어천 상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수어천의 바람을 안주 삼아 막걸리의 냄새만 맡아도 벌써부터 거나하게 취하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오래전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진상면 용계마을로 향했다.

진상면 섬거리 용계마을은 당시 마을 앞으로 흐르는 수어천 가맛소에서 용이 나왔다 해서 용계(龍溪)라 전해진다. 한편 뒷산의 형국이 닭이 알을 품은 모습이라 해서 풍수지리학 상으로 ‘용계포란형’이다 한데서 유래돼 용계라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주 소득 작물로는 매실, 감, 취나물 등이 있고 현재는 33가구 73명의 인구수로 소박한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널찍한 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기에 수월했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 어르신 두 분이 콩을 털고 있었다. 그 옆에서 용계마을 서문열 이장이 취재기자를 반겼다.

“요새 한창 수확기라 마을 사람들이 바빠서 잘 모이질 못해요”

마을회관에 도착해 막걸리를 내려놓자 몇몇 마을 어르신들이 취재기자보다 막걸리에 더 관심을 가졌다. 바쁜 수확기에 막걸리 한 사발은 소박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올해로 이장직을 수행한지 4년차인 서문열 이장은 공직생활을 하다 7년 전에 과감하게 그만둬 버렸다. 그 후, 몇 년간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농사일을 하다 요즘에는 마을일까지 서 이장은 하루하루가 바쁘다.

용계마을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3냉연공장과 자매마을로 지낸지가 벌써 30여 년째다. 3냉연공장은 매년 수확기마다 사람들이 찾아와 수확을 돕기도 하고, 도배‧장판 교체는 물론 마을에 필요한 부가 물품 지원까지 복지후원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추석에는 잔치를 후원해 노래자랑을 하기도 하고, 대보름에는 달집을 태우며 마을의 축원을 기원하는 행사도 늘 함께 해왔다.

서 이장은 “3냉연부와 자매를 맺은 지 오래됐는데 늘 감사하죠”라며 “변함없는 관심과 지원이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큰 도움이 돼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 이장은 “수어댐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 위 새내에 큰 정각과 정자나무가 장관인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각은 이전되고 정자나무들은 수몰돼 없어졌어요”라며 “그때는 서울에서도 사람이 내려와서 여름에는 냇가에서 수영하고 겨울에는 얼음도 단단하게 얼어 썰매도 타고 그랬죠”라고 수어댐이 생긴 것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런 이유에서였나, 현재 마을은 대부분의 마을과는 달리 정자나무가 한그루도 없다.

서 이장은 또 “수어댐이 생길 당시에 농토가 많이 수몰됐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두 배는 더 큰 마을이었죠”라며 “당시 수몰 보상은 받았으나 이후 지금까지 마을에 연간 지원되는 비용이 다른 마을보다 턱없이 적은 것은 아쉽죠”라고 덧붙였다.

서 이장은 “저 위에 진상교를 지나면 농토로 이어지는 농로가 없어 이래저래 농사활동이 어려워요”라며 “시에 현재 고랑을 복개하고 농로를 만들어 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늘 거부당했어요”라고 전했다.

서문열 이장은 “내 이장직 남은 임기 중에도 꼭 다시 건의하고 건의해서 되도록 농로가 꼭 개설됐으면 해요”라며 “그저 있는 농사라도 어르신들이 편하게 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마을을 산책하며 지천에 널린 취나물 꽃을 본다. 취나물 꽃은 더없이 예쁘지만 손이 참 많이 가는 작물이다. 마을을 칭찬해 달라는 말에도 부끄러워하고, 서로간의 칭찬에도 쑥스러워하는 마을 주민들은 무척이나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서운한 일들도 많지만 언젠가 취나물 꽃처럼 소박하고 순박함 속에서 더없는 아름다움이 만개할 날이 마을에 꼭 찾아오길 바래본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