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은 보약 같은 친구!

가을철 시골부락을 찾아 다니다보면 어느새 추수를 끝낸 논들은 그루터기만 남기고,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랭이봉의 소박한 능선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잔잔한 세월을 품은 수평천이 시작된다. 굽이굽이 돌아 흘러가는 냇물은 어느 정자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쉬어가기도 한다. 이번엔 옥곡면 대죽리 오동마을로 새로운 만남을 찾았다.

마을의 수호신, 마을의 자랑 300년된 느티나무.

오동마을은 오래전 마을 앞 수평천 냇가에 큰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 홍수가 날 때 냇물을 건너는데 교량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을이름은 이전부터 ‘오동정’, ‘오동쟁이’라고 불리기도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약 43가구, 인구수 108명 정도의 마을로 주 소득 작물은 매실‧감‧밤 등이다.

사진촬영을 도우려 같이 나선 편집기자와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어르신들이 너무나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고, 기자님들이 오신다드만 시악시가 아주 젊고 이삔 사람이 왔네” 다들 알겠지만 여기서 어르신이 말한 ‘시악시’는 취재기자가 아니라 편집기자다.

옥곡면 대죽리 오동마을 김용중 이장님

오동마을에서 가장 막내인 올해 이장직 4년차 김용중 이장은 부지런히 술상을 차리고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를 한잔씩 따라드린다. 김 이장과 어르신들이 “건강을 위하여!”를 다 같이 따라 외치며 시원하게 죽죽 들이켠다. 막걸리를 먹으며 한동안 자연스럽게 부락이야기가 오가다보니 잠시 기자들은 옛이야기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듣는 어린아이처럼 되기도 했다.

김용중 이장은 “우리 마을은 냇가에 있는 정자나무가 정말 아름다워요. 정자나무와 함께 냇가로 흐르듯 자란 느티나무도 가장 자랑이죠”라며 마을의 자랑을 꺼내기 시작했다. 김 이장은 “한 달에 두 번씩 주민들과 마을청소도 하구요. 오늘 점심도 마을 사람들 다 회관에 모여 같이 식사를 했어요. 그만큼 서로 화목하죠”라고 덧붙였다.

노부부가 마주앉아 고구마를 캐고있다.

김 이장의 일과의 시작은 늘 같다. 마을을 산책하듯 한 바퀴 돌며 간밤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일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김 이장은 “거창하게 뭐 그런 것은 아니고, ‘계세요?’라고 불러서 대답이 있으면 ‘별 일 없구나’하고 다음 어르신께 가는 거죠 뭐. 무슨 일 있으면 대답을 안 하거나 할 거 아니에요”라며 소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장직을 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도 “그냥 놀고먹고 했죠”라고 말하는 김 이장은 사실 이 마을에서만 4대째 살고 있는 진짜 ‘토박이’다.

김용중 이장은 “시골 부락들이 다 그렇지만 인건비도 안 나오고 젊은 사람 유입도 안 되니 갈수록 일손이 없어서 힘들어요. 수확기 때는 자식들이 내려와서 돕고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농사일을 하기에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죠”라며 요즘 시골 마을의 비슷한 추세에 대해 힘들어했다.

어르신과 소들의 모습이 정겹다

취재를 마치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던 도중에 어르신 한분이 내려와 자신과 안사람 사진 하나만 찍어달라며 기자들을 부른다. 회관에서 ‘월남전’에 참전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어르신이었다. 어르신은 들깨를 손질하고 있는 안사람에게 “이리오소. 사진 찍게. 우리 죽으믄 사진 하나라도 남겨야지”라며 꼭 사진에 자신의 집도 같이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키우고 있는 소들과도 사진을 다 찍은 어르신은 “대접도 못했는디 자꾸 귀찮게 해서 미안허네”라며 깊은 주름만큼이나 넉넉한 미소를 건냈다.

오동마을에는 설화가 하나 내려온다. 마을 건너 산 중턱에 ‘선바구’라 불리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마을이나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바위가 ‘운다’는 전설이다. ‘선바구’를 찾아 나섰으나 나무가 우거져 결국 찾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건배사를 외치며 마을사람들이 잔을 높이 들어 올리고있다.

바라는 것 하나 없고, 욕심이 없는 오동마을 사람들과 김용중 이장은 사실은 새로운 사람들이 시골에 많이 유입돼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 그들의 바람대로 마을에 활력이 불어넣어질 때 어쩌면 ‘선바구’가 전설처럼 기쁨의 울음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축하할지도 모르겠다.

사진 - 하민정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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