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의 소소하고 순박한 미소

봉강면 조령리 부암마을 한기원 이장님

성불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좌우로 펼쳐진 산에 아름다운 단풍이 한창이다. 빨갛게 물든 꽃단풍과 노란 은행잎들이 섞여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다. 어느새 가을도 절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장님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봉강면 조령리 부암마을로 막걸리와 함께 도착했다.

풀숲에 가려진 부암마을의 당산나무.

광양 시지에 따르면 부암마을은 조령리의 중심지로 예부터 아랫먹뱅이라고 불리어 오던 중 묵방(墨方)이라는 이름이 고상하지 못하다 해서, 1902년 송식이란 사람이 스승 부(傅)자와 바위 암(巖)자를 합해 부암이라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암(巖)자는 마을 앞에 바위가 많음을 참고했다고 한다. 현재는 32가구, 74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아이고! 우리 마을은 막걸리 드시는 분들도 별로 없는디”

마을회관에 막걸리를 들고 들어가자 한기원 이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올해 4년차인 한 이장은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 부암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는 주민들의 휴식을 위한 우산각이 있다.

한기원 이장은 오래전에 이장직과 함께 의용소방대, 방범대 등 봉사활동을 했지만 너무 바쁜 탓에 이장직을 쉬었다가 다시 하고 있다. 지금도 이장직은 물론 매실농사와 산장 일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한 이장은 차분하고 진득하게 마을 일을 해나가고 있다.

한편, 마을회관 안에는 여자 어르신들만 있었다. 술을 잘 못 드시는 어르신은 과일주스를, 또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어르신은 대접에 한가득 부어 한동안 술자리가 이어졌다.

한 이장은 “남자들이 한 12명이나 남았을까? 비율로 따지면 8:2도 아닐거에요”라며 “여자 분이 힘이 있고 그런 것도 아니라 자식 줄 것과 자신들 먹을 거만 좀 농사짓고 하지”라고 말했다.

베락소는 여름철 휴양객들이 찾는 명소다.

한 기원 이장은 이어 “우리 마을은 소득을 창출하는 그런 마을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다들 뭐 땅이 많고 그런 부자동네도 아니라서 마을 자치운영에 어려움이 많아요”라며 “그래도 십시일반 모아서 일 년에 한번 정도 마을 사람들과 식사도 하고 관광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라고 욕심 없는 모습을 보였다.

부암마을 자랑 좀 해달라는 질문에 어르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열었다. 한 어르신은 “마을 앞에 동냥치쏘랑 베락쏘가 있어 여름이면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며 “어릴 적에는 바구가 뜨끈뜨끈해 누우면 등이 따땃하니 좋았다”고 말했다.

동냥치쏘는 예전에 동냥치가 쏘에 빠져 죽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베락쏘는 바위에 벼락이 떨어져 쩍쩍 갈라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기원 이장은 “인근 마을은 전부 하수도 공사가 마무리 됐는데 우리 마을은 하수도 시설을 설치할 땅이 마땅치 않아 그동안 공사를 못했다”며 “이장직이 끝나기 전에 꼭 땅을 마련해 어르신들이 수세식 화장실도 쓰고 생활여건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마을 숙원 사업으로 하수도 공사를 꼽았다.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이 힘찬 건배를 나누고 있다.

한 이장과 함께 마을회관을 나와 마을의 당산나무, 동낭치소와 베락소 등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마을은 차분하고 진득한 한기원 이장의 성격을 대변하듯 소소하면서도 단단한 모습이다.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유난히 아름답게 물든 꽃단풍 너머로 잘 자라기 어렵다는 200년 넘은 참나무가 굳건히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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