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님은 마을의 유쾌한 인기쟁이

자신이 살던 마을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간다는 것은 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중마동에 위치한 어느 마을은 중동간척지가 완성되기 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다였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짓고 살았던 소년은 어느새 유쾌한 중년이 됐다. 논과 밭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이제 저 멀리 진월면과 옥곡면 등지로 나가 농사를 짓는다.

막걸리와 함께 가야산 정남쪽에 위치한 마흘마을을 찾았다.

마흘마을의 이름 유래는 근처의 산정(山頂)이 마치 말과 같다 해서 ‘마리(馬里)’라 하다가 ‘마흘(馬屹)’로 개칭했다고 전해지며, 한편으로 마을 정자나무 밑의 ‘몰바위’에서 마을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현재는 70가구, 150명 정도가 거주중이며, 이중 경로인구인 65세 이상이 57명이다.

마동 11통 마흘마을 이복기 통장님.

마흘마을 입구에 도착해 이복기 통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나 여기 나와서 기다리고 있네!”라며 이 통장이 손을 흔들어 반긴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짙은 쌍꺼풀을 지닌 그는 유쾌한 성격이었다.

이복기 통장은 막걸리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가는 중에도 “우리 마흘마을은 광양에서 구(舊)마을이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마을이야”라며 연신 마을 자랑을 늘어놓았다.

앞서 걷는 이 통장은 올해 3년차로 내년 6월이면 임기를 마무리한다. 마을회관에 도착하자 남자 어르신들이 계신 경로당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 통장은 늘 있는 일인 듯 “어르신들 또 어디 갔는갑구만”이라며 옆에 여자 어르신들이 계신 경모정 문을 열었다. 경모정에서 가득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이 통장이 “이것이 뭔 냄새요?”라고 묻는다.

어르신들은 “점심때 된장찌개 해먹어서 글네”, “아이, 달력 얼마나 남았는가”, “넘들 다 가져가블고 나꺼이 없어”, “뭐더러 왔는가”, “어이, 저거이 뭐단가?” 등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낸다.

이복기 통장과 오빠부대의 막걸리 한잔.

이복기 통장은 “막걸리여, 막걸리! 광양시민신문서 어르신들 드시라고 막걸리를 가져왔소”라고 넉살좋게 말하며 어르신들께 막걸리를 따라드린다.

어르신들은 다시 “아따, 나는 술 안 먹는디”, “왜 조금만 줘! 가득 따라야제”, “대낮부터 술이당가”, “마시고 취해블믄 한심 자고 가면 쓰겄구만”, “거 참! 많이 따르랑께” 등 이 통장을 닦달하고 나선다.

이 통장은 마치 친아들처럼 “그려! 많이들 잡솨브러. 건강을 위하여!”라고 되받아치며 어르신들과 같이 건배를 한다. 이 통장은 귤을 까서 어르신한테 드리기도 하며 한참을 어르신들과 막걸리를 마신다. 이 통장은 그러다 문득 취재가 생각난 듯 묻는다.

“그래. 뭘 취재한다고?”

어르신들의 웃음이 한참 터져 나왔다. 물론 엄청난 수다와 함께.

이 통장은 “나는 뭐 힘든 것도 하나 없고, 마흘마을 토박인디 어르신들 보믄 우리 어무니 같아서 그냥 경로에나 좀 힘을 쏟고 있제”라며 “통장이 뭐 할 거이 있단가. 그저 어르신들 잘 있는지, 마을에 불편하거나 뭐 좀 고쳐야할 거 있는지 요런거나 찾는 거지”라고 겸손을 보였다.

이 통장은 또 “작년에도 마을 앞에 시비 지원 받아서 조경사업을 했는디, 올해는 예산이 없고 어찌고 해서 그냥 도에다가 지원 좀 해주십사 해서 도비로 또 조경사업을 해브렀어”라며 “아따, 내가 사는 마을인디 더럽고 그런 거를 어찌 보고 있당가. 내일도 통장들이랑 환경정화 운동하러 간당께”라고 남다른 추진력과 깔끔한 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이복기 통장은 마을 조경사업은 물론이고,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해 커뮤니티센터 내 목욕시설 할인 이용, 마을 내 방범CCTV 설치, 벽화 사업 등 마흘마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추진하는 살림꾼이다.

마흘마을 입구 표지석.

이복기 통장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 “하고 싶은 거야 많제. 경로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잡고, 환경‧정화 사업이고, 미관사업이고 전부 더 하고 싶고, 문화마을, 보존마을로도 발전하고 싶고 그러네”라고 말했다.

이 통장의 사진을 찍을 시간이 되자 어르신들이 다시 붙잡는다. “아이, 막걸리 가져가소”, “우리는 배터지게 먹어브렀어. 옆에 남정네들 주던가 하소”, “이 통장, 나는 달력이 없당께” 등 어르신들이 이 통장을 붙잡는 통에 경모정을 빠져나올 때까지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했다.

“아따! 놔두고 드시랑께! 그래서 넉넉히 가져 왔구만”

넉살좋게 빠져나온 이 통장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가 이렇게 인기쟁이여. 사진 잘 찍어야 되네잉. 나 보고 자퍼 하는 사람 많네”

마흘마을의 랜드마크인 커뮤니티센터와 마동저수지.

마을을 더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동안 이 통장은 다시 마흘마을의 자랑을 한참을 늘어놓았다.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흘마을은 중마동 11통으로 구역 내에 중마동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와 마동제가 속해있다. 마흘마을을 떠나며 바라본 커뮤니티센터가 노을빛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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