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이라는 역사를 찍는 아버지와 아들

시간의 저편을 품고 있는 필름이 드디어 암실 한 구석에 도착했다. 24장의 필름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필름 위에 루페(Loupe)가 놓인다. 루페는 필름의 초점이나 노출은 물론 촬영된 피사체의 표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는 확대경이다. 입을 앙 다물고 눈을 감고 있는 형제, 막걸리에 흠뻑 취해 마루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카메라를 향해 뻗은 누군가의 손, 빛이 새어 들어가 잘못 찍힌 사진. 흘러버린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기억들이 필름 속에 존재한다. 새까맣고 뭉툭한 외눈박이 카메라와 필름의 합작품. 그건 바로 우리네 인생사다. 두근두근 떨림과 기다림의 아련한 맛이 잘 어우러졌던 아날로그 시절. 빠르고 편리한 것에 익숙해져 놓쳐버렸던 불편함이 문득 그리워지는 오후, 흑백과 컬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읍내 중앙사진관을 만났다.

▲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사진관 박동기

과학시간에 처음 만져본 카메라
‘찰칵’ 찍는 손맛에 반해

중앙사진관은 말 그대로 광양읍내 ‘중앙’에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1979년12월 15일 중앙 사진관은 예식장과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박동기(80)사진사의 전성기였던 80년대. 그의 역사를 들어봤다.

박동기 사진사가 카메라를 만난 건 15살 때였다. 야간으로 광양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시절, 과학 시간이었다. 과학 선생님이 취미 삼아 하는 카메라를 학교로 가져와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이 화근이 됐다. 박 사진가는 카메라를 조물닥 조물닥 거렸다. 찰칵 셔터 누르는 손맛이 좋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을 찍고 사진관으로 달려갈 때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이름 석 자가 적힌 현상봉투를 받았을 때 ‘아, 어떻게 나왔을까’ 하고 조심스레 꺼내보던 그 따끈따끈한 추억들. 사진 현상하는 재미는 더욱 더 쏠쏠했다. 과학시간이 기다려졌다. 열다섯의 인생, 최고의 수업을 만났다. 박 사진가는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 서정복 과학 선생님이셨어. 카메라에 심취돼 있어서 글자가 눈에나 들어왔겠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읍내로 나와 한 사진관에서 보조로 사진을 배우다 봉강초 앞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했다. 그는 “그때 그 시절 사진관은 호화를 누렸지. 동네 사람들이 다 왔으니까. 사진 찍는 것도 너무 좋은데 돈까지 버니 얼마나 더 좋았겠어”라며 60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 아날로그 쇼파와 디지털 액자의 만남.

봉강초 앞에서 시작해 읍내 ‘중앙’진출
2대째 운영 중인 사진관

작게 시작했던 사진관에서 읍내에 진출하기까지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은 크나큰 행복도 함께 가져왔다. 어여쁜 여숙기(76)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셋이나 낳았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 사진관을 운영 중인 박덕찬 사진가는 그의 장남이다. 박덕찬 사진가는 공대를 졸업했다. 사진이 직업이 될 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대학 시절, 주말마다 집에 내려와 고생하는 부모님을 도맡아 비디오 촬영을 해온 것이 켜켜이 쌓여 내공이 된 것이다. 박덕찬 사진가는 “부모님을 도와드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됐고, 사진관도 운영하게 된 것 같다”며 “그저 정말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미소를 보였다.

▲ 쉽사리 맞춰지지않는 초점.마음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과 닮았다.

박동기 사진가는 “자식들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며 “그래도 중앙사진관의 역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어서 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아들이 잠시 사진관을 비운 시간, 박동기 사진가가 오랜만에 카메라를 잡았다. 쉽사리 초점이 잡히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 하지만 그는 포기 하지 않는다. “정 기자, 옆으로 다시 서봐”라며 초점 맞추기를 여러 번. 드디어 찍혔다. 인생네 인생사,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다고 조급해말고 초점을 맞추려고 한 걸음 내딛기를. “정 기자, 또 안 찍히는데?”. “작가님, 제가 갈게요!”디지털도 아날로그화 시키는 중앙사진관의 풍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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