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엄마’ 같은 통장님

길호대교를 지나 금호동으로 향했다. 제철로에서 다시 금섬해안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차창 왼편에 금호동과 중마동을 잇는 무지개다리가 보였다. 칼바람 사이로 햇살이 따뜻하다. 광양만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몇몇 주민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한동안 쌀쌀한 날씨 탓에 잔뜩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저마다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 금호동 12통 김매연 통장님

매화연립아파트는 총 22동으로 이뤄졌는데, 그 중 12통은 1동부터 12동까지다. 바로 인근에 금호동 주민센터는 물론 몰오브광양, 광양제철남초등학교 등이 자리 잡고 있어 교육부터 쇼핑‧문화까지 생활전반에 편리한 시설들이 집중돼있는 곳이다. 매화연립아파트는 24동까지 있지만 실제 동은 22개 동이다. 이유는 13동과 19동이 없기 때문인데, 그게 매화연립아파트의 한 가지 독특한 점이다.

금호동 12통(매화연립아파트) 김매연 통장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인 금당 어버이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 통장과 동료 통장들이 반긴다. 이장님 막걸리를 통해 광양시민신문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김미숙 통장(10통)은 물론 강미용 통장(13통), 정한선 통장(17통)이 함께 나와 어르신들을 위한 상을 차리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두부김치와 귤, 그리고 속을 달래줄 호박죽이 상에 올라왔다. 김 통장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했다는 호박죽은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어르신 몇 분과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동안 마을 회의가 이어졌다.

▲ 통장님과 즐거운 막걸리 한잔

김 통장은 “어떡해요. 어버이집 문을 안 여는 날인 걸 깜빡하고 약속을 잡아버렸네. 어르신들 좋아하실텐데…”라며 어르신들이 많이 안 계신 것을 아쉬워했다. 덕분에 동료 통장들이 지금이라도 어르신들을 모셔오겠다는 것을 겨우 말리느라 혼이 났다.

올해 2년차를 맞이한 김 통장은 현재 금호동 통장협의회 총무를 맡고 있다. 김 통장은 “금호동에는 따로 부녀회가 없어요. 그래서 통장들이 부녀회 역할을 대신하고 있죠”라며 “금호동 총 18개 통 중에 16개 통장이 모두 여자에요”라고 말했다.

김 통장은 과수원집 5남매 중 큰딸이다. 남편은 9남매 중 7번째고, 아들 순으로는 막내다. 전북 정읍 출신의 김매연 통장은 당시 포항제철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 후 포항에서 2년을 살고 이어 광양제철로 옮겼다고 한다. 그렇게 광양에서 자리 잡은 지가 벌써 31년이 넘었다.

김 통장은 “자식들은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인데 딸은 광양에 와서 낳았어요. 남편은 포스코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해서 지금은 ‘백수’죠”라며 “전 남편을 ‘영원히 자유로운 남자’라고 불러요”라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김 통장은 “원래는 통장이나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어요. 부녀회 반장을 할 때도 순차가 돌아와서 하고 그랬거든요”라며 “하지만 친구 권유로 통장을 하게 되면서 하나둘 씩 마을 일에 관심들이 생기더라구요. 아무래도 책임감도 생기구요”라고 통장을 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김 통장은 이어 “사실 1년차 땐 뭘 모르고 시간만 훌쩍 갔는데, 통장 일을 계속 하면서 다른 동료 통장들과 봉사도 하고 그러다보니 점점 책임감도 강해지고 이제야 뭘 좀 알아가는 것 같네요. 아직 힘든 일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김매연 통장은 앞으로 1년간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분리수거’를 꼽았다. 김 통장은 “요즘 분리수거가 잘 안돼요. 일부 사람들이 쓰레기를 봉투째로 그냥 버리기도 하고, 박스 등을 접어놓지 않고 그대로 던지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라며 “남은 1년간 집중해서 분리수거에 대한 주민의식도 개선하고 깨끗한 아파트를 만드는데 힘을 쏟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금당어버이집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김매연 통장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김 통장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다. 잘났다고 말하지도 않고, 잘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고, 그래서 더 주변 동료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이다.

김 통장은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평범한 사람’은 욕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서 더욱 꾸밈없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김매연 통장의 얼굴이 따뜻한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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