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칼럼

▲ 김광희 광양보건대학교 교수

주의(注意)와 지각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지심리학 실험 중에 스트루프 효과(stroop effect)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뇌 속에 있는 시각체계가 언어를 다루는 인지체계와 서로 작동방식이 달라 간섭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를 가리켜 스트루프 효과 또는 스트루프 간섭효과라 부른다.

실험 방법은 간단하다. 빨간색으로 ‘빨강’, 파란색으로 ‘파랑’이라 쓰인 글자를 보여주며 읽도록 하는 경우와 다른 색깔로 쓰인 ‘빨강’과 ‘파랑’을 읽도록 하는 경우의 글자 읽는 반응 속도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색을 표현하는 글자와 글자의 실제 색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글자를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혼란스러워한다.

예컨대, 빨간색 ‘빨강’을 읽는 것보다 파란색 ‘빨강’을 읽는 것을 더 어려워한다. 눈에 보이는 색깔은 시각을 통해 지각되는데 지각된 결과와 다르게 인지정보를 처리해야 할 때에는 뇌 속에서 간섭이 발생하여 판단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또 잘못 판단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이다. 색깔은 시각으로 지각되는 ‘자연적 사실’인 반면 글자는 사회적으로 약속된 ‘합의적 사실’이라는 데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 본성적 차이가 지각과 인지 사이의 왜곡과 혼란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색상 지각이 왜곡될 수 없는 현실이라 한다면 규약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공이요 허상일 수 있다는 추론에까지 이를 수 있다. 객관적이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정보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 정보와 불일치하는 다른 내용으로 이를 표상해야 한다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광양보건대학교의 교수로서 필자는 최근 5년여 동안 대학 설립자와 경영진의 범죄 때문에 비리대학이라는 세상의 비난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왔다. 또 대학평가 E등급 판정 때문에 교육과 취업마저 부실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차가운 눈총을 의식하며 지내왔다. 다행이랄까 학생을 가르치고 취업시키는 일이 아직까지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눈에 보이는 객관적 실재와 상관없이 이 대학을 부실대학이요 비리대학으로 인지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대학 구성원 모두가 일종의 스트루프 효과를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부실대학 교수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오면서 한계상황이 발 앞에 다가올 때마다 학생들을 통해 힘을 얻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열심히 강의 내용을 받아 적는 학생들, 어려운 국가고시의 관문을 거뜬히 통과하며 자랑스럽게 웃는 학생들, 취업의 불황을 실감하지 못하게 만드는 열정 그 자체인 교수와 학생들, 시민 속에서 시민과 함께 청년의 힘을 키우겠다며 당차게 일어서는 학생들, 대학이 뒤집어 쓴 오명을 자신들이 벗겨내겠다며 탄원의 변을 외치는 참으로 무고한 학생들, 밤이 깊도록 책을 들고 강단을 지키며 학생들을 다독이는 중년의 교수들, 이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면서도 힘을 잃지 않게 만든 버팀목이었고, 내가 이 대학의 교수로서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커뮤니티센터에 모여 나이팅게일의 선서로써 스스로 우리 사회의 희망임을 천명해준 간호과 학생들. 그 어떤 무대 조명보다도 더 밝고 환한 학생들의 표정과 미소, 재기발랄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보람과 희망이 아닌 다른 말을 생각해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부실대학의 학생으로 읽어내기를 강요하는 사회의 일방적 요구에는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반동의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부실’을 ‘不實’(불실)로 이해한다. 이 두 어휘가 전혀 다른 말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不死(불사)는 ‘불사’로 읽고 不純(불순)은 ‘불순’으로 읽으면서도 不實(불실)만은 ‘부실’로 읽는 것도 모자라, 너무도 부실하게 ‘부실’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에 오용하기까지 한다. ‘부실하다’는 말은 튼튼하지 못하다는 우리 고유어이지만 ‘불실(不實)하다’는 ‘결실’과 맞서는 전혀 다른 뜻의 말이다.

광양보건대학교가 튼튼하지 못한 면이 있다. 재정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시설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교육에 투자되어야 할 자금이 밖으로 빼돌려지는 동안 교육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외적 지표가 ‘부실’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不實하지는 않다. 이 대학을 졸업하고 국민의 건강지킴이로 활동하는 졸업생들이 이미 1만여 명을 넘어섰고, 아직도 캠퍼스에는 1,500여 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 보람과 열매 앞에서 아무도 이 대학을 ‘不實’대학이라 부를 수는 없다.

부모는 건강한 자식보다도 부실한 자식에게 더 마음을 쓰게 마련이다. 더 많은 보살핌과 따뜻한 손길만이 부실한 자식을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열 개나 있지만, 그 중에 작고 부실하다 하여 잘라버려도 좋을 손가락이란 없는 법이니까.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