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쓸어 담는 전영래 환경 미화원

지평선 맞닿은 하늘 질펀한 노을이나
술 취한 바람결이 흩고 가는 노란은행잎
언제나

그런 서정만
그대 몫이 되게 할까

형체 없는 그림자야 미리 쓸지 못하지만
노동의 신성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그대의 빗자루 끝에다
놓고 싶은 이 시대…….

사랑의 보습 꽂고 꿈밭 가는 이웃 속엔
생선살에
뿌려지는 소금 같은 약속이 있듯
살뜰한
그대의 비질로
내 뜨락도 쓸어주게

▲ 빗자루와 함께한 13년, 이제는 한 몸이 된 듯 익숙하다.

찬바람이 세차게 분다. 문득, 강호인 시인의 ‘가을 청소부에게’라는 시가 떠오른다. 열두 달 중 환경미화원이 가장 바쁜 달. 바로 낙엽이 떨어지는 달이다. 광영동 목우 아파트 근처에서 묵묵히 낙엽을 쓸고 있는 전영래(59) 환경미화원을 만났다.

오후 1시부터 쓸어 담은 낙엽의 결과물은 전영래 미화원 키를 훌쩍 넘는 비닐 봉지에 고이 담겼다. 무려 13봉투나 된다. 한 봉지당 무게는 약 15kg 정도, 3시간가량 1톤의 낙엽을 쓸어 담았다.

전영래 미화원은 “미화원들이 가장 바쁜 날은 바로 낙엽을 치우는 요즘”이라며 “자연의 섭리이고 쓸어 담는 일이 직업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낙엽을 치우고 있다”고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낙엽은 시간이 지나면 나무의 자양분이 된다. 전영래 씨에게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환경미화원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씨는 미화원 이전에는 20년간 운수업에 몸담았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미화원을 지원하게 됐고, 곧 14년차를 맞이한다.

▲ 전영래 미화원이 가을을 쓸어담고 있다.

전 씨는 새벽 5시부터 9시까지 그리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8시간을 근무한다. 구역은 광영동 목우아파트에서 인근 사거리 까지다. 지금은 미화원 업무가 몸에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지기까지는 나름의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힘이 들 때마다 사랑하는 아내와 삼남매를 떠올리며 손에 힘을 꽉 쥐며 빗자루를 들었다.

전 씨는 “성실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모토”라며 “어떤 일이든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가 그리고 가장이 되고 싶다”고 언급했다. 빗자루를 드는 날이면 날마다 힘든 마음도 함께 쓸어 담았다. 삶을 결정하는 건 다양한 경험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이다. 그는 말한다. ‘딱 지금처럼만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는 “젊은 시절,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이 해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인 것 같다”며 “앞으로의 삶에 욕심을 가지기보다는 지금 있는 이 삶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앞으로의 바람이다”고 털어놨다.

아들과 딸 자랑도 빼먹지 않았다. 듬직한 아들 둘은 현재 직장인이고, 사랑스러운 딸은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전 씨는 “아이들도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고 있으니 더 바랄 것도 없다”며 “그저 건강하고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 씨의 휴무는 격주로 한 달에 두 번이지만, 틈틈이 여가생활도 즐긴다. 그는 ‘낚시’와 ‘등산’을 언급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 13개의 낙엽 봉지. 1톤 가량의 가을이 담겼다.

이제 퇴직까지 남은 시간은 2년. 노후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다. 그는 “2018년 새해는 가족들과 함께 광양 서산에 올라 맞이할 계획이다”며 “새해 소망은 그저 지금처럼, 그리고 성실하게!”라며 함박웃음을 선사했다. 가을을 쓸어 담는 청소부 전영래 씨의 마음은 늘 봄처럼 따스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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