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흰 쌀 밥 위에 올린 김 한 장

‘고작’이 아닌 ‘명작’을 이루는 최고의 반찬
김 양식이 최초로 이뤄진 광양 태인동 ‘김시식지’

오늘도 식탁 위에는 구운 김과 그 옆으로 작은 간장 종지가 놓였다. 아버지는 숟가락 위로 흰 쌀밥을 소복이 뜬다. 그 위로 김을 올려 국과 함께 떠먹는다. 고소한 김과 얼큰한 국물의 조합은 추운 겨울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불가항력의 ‘힘’이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김, 광양은 김과 인연이 깊다. 비문동초에 따르면 광양 태인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김을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첫 눈 오는 월요일, 김시식지를 찾았다.

▲ 영모재와 김 역사관이 눈에 들어온다.

광양 역사의 핏줄, 김

광양시 김시식지1길 57-6. 몸보다 마음이 멀어 자주 오지 못하는 역사 앞에 섰다.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 113호로 지정된 김시식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앞에 보이는 건물 하나가 있다. 그 곳이 바로 ‘영모재’다. 영모재는 김여익공을 모신 곳으로 비문동초가 남아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멍하니 영모재를 바라본다. 곧 100년을 맞이할 역사다. 삐걱 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조성희 문화해설사가 “눈내리는 날 김시식지 참 운치있죠”라며 기자를 반긴다.

현재 김시식지를 지키는 문화해설사는 21명. 그들이 돌아가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 중이다.

▲ 조성희 문화해설사가 김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성희 문화해설사를 따라 김역사관으로 들어섰다. 김 역사관에는 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제조 방법 등에 대해 전시가 돼있다. 2007년부터 문화해설사의 길을 걸었다는 그는 설명 한 줄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묘미를 부렸다.

조 해설사는 “태인도의 김여익이 처음 김양식법을 보급했는데, 해변에서 떠내려 온 나무토막에 김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양식을 시작했다”며 “김의 원래 이름은 ‘해의’였으나 이때부터 김여익의 성을 따 ‘김’이라고 불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양제철소 견학 코스를 통해서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 애기섬 이 있던 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덧붙였다. 김 양식지는 오래전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자취는 잃었지만 역사는 남아있다.

▲ 유물 전시관에는 섶을 비롯해 당시 김을 제조했던 물건들이 있다.

근무지가 김시식지, 정말 멋진 직장

조성희 문화해설사가 김 시식지에서 근무한 것은 2011년도부터다. 고향은 경북 영양군, 안동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영양군 아가씨가 광양으로 오게 된 것은 남편 직장 때문이었다. 다른 도시의 첫 만남이 낯설 법도 하지만 광양은 정겨웠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있는 곳이고, 이왕 온 거 정을 붙이고 살아야 좋은 거니까”라고 미소로 화답했다.
아들만 둘이다. 그 중 하나는 장가를 갔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손주도 있다. 문화해설사 공부는 2007년부터 해왔다. 광양에 살면서 광양에 대해 무지하다는 자책도 한몫했고, 노후를 즐겁게 보내는 법을 궁리하다 찾은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조 해설가의 사무실은 최고다. 김시식지, 옥룡사지, 광양 와인 동굴 등 관내 문화재가 있는 곳이 바로 그의 사무실이 된다. 매일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같지만 같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최근에는 숲 유치원 해설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함께 손톱에 봉숭아물도 들이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 김 역사관 안에는 김 제조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 사진들이 전시돼있다.

이제는 제2의 고향, 광양 역사 지키고파

“지역민들부터가 지역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가 해설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단연 ‘방문객’이 많을 때이다. 그만큼 역사가 관심 받고 있다는 방증이므로. 해설사가 근무하고 있는 방은 어떤 모습일까. 1평 남짓 좁은 방이지만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스하다. 조 해설사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 통에서 제주도 귤, 청송 사과, 광양에서 말린 감 등을 주섬주섬 꺼냈다.

사과를 한 알씩 나눠 먹으며 해설사는 “지금도 잘하고는 있지만, 광양시가 앞으로 더 문화재를 지키는데 앞장서면 좋겠다”며 “역사와 함께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귀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 해설사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광양 그리고 문화재를 사랑할 예정이다.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김 시식지라는 역사는 여전히 볕이 들고 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