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지금 더 많은 노력해야지”

백운산 노랭이봉 끝자락이 포근하게 감싸준다. 동천은 늘 그랬듯 유유히 흐른다. 멀리 산을 돌아 나온 바람소리가 대나무 숲에 잠시 머문다. 대나무 숲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어떤 마을에 바람이 가져온 많은 이야기도 함께 둥지를 틀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려 옥룡면 죽천리 죽림마을을 찾았다.

광양시지에 따르면 죽림마을은 죽천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대숲이 많아 ‘대숲골’이라고도 불렸다. 이 마을은 해발 1000미터인 억불봉 밑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가옥들이 우리나라 지도모양을 하고 있으며, 은꾼안-골, 즉 죽림 동북쪽에 있었던 마을인 망동(望洞)은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폐동돼 특정지명으로만 남아있다. 그 당시의 마을형성 과정과 유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죽림마을은 현재 약 75세대, 120명의 인구수를 자랑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벼, 매실, 감 등이다.

서경수 죽림마을 이장은 단단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잘 내보이는 사람이다. 광양군청 시절, 당시 32세 나이로 이장직을 처음 시작했던 서 이장은 중간에 그만두었다가 마을 주민들의 권유로 다시 이장직을 수행한지 올해로 16년차다.

서 이장은 “우리 마을은 4~5년 전까지 65세대로 쭉 이어져왔어요. 그러다 주택지 선정 등 이후에 많은 외지들이 우리 마을을 선호해서 현재는 75세대로 늘었죠. 거주지 등록을 안한 사람들까지 하면 90세대가 넘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읍에서 차로 10분 거리 정도기도 하고 당시에 다른 마을보다 땅값도 낮았던 게 주된 요인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죽림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 이장은 아쉬움이 참 많다. 그는 마을의 역사를 함께한 주민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쉽다. 또 예전에는 밤이나 벼 생산량도 높았으나 지금은 가족들 먹는 농사가 대부분인 것도 아쉽다. 마을의 많은 논‧밭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 이장은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많은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나이 들어서나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에요. 생산대비 소득이 너무 적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죠”라며 “1차 산업의 대표인 농업과 나 같은 농업 종사자가 무너지면 갈수록 경제는 더욱 무너질지도 몰라요”라고 농업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전만큼 사람들이 많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외지로 나가 일을 하거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농촌과 시골 자연부락에 점점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서 이장은 일을 쉬거나 미루지는 않는다.

서 이장은 “마을은 크게 보면 한 가족과 다름없어요. 지금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먼 미래에 후손들이 힘들어질 테고 어쩌면 나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죠”라며 “그러니 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지금 더 많이 노력해야 돼요.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라고 말했다.

서 이장은 또한 “마을의 청년들이 조금 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마을회관 2층에 청년회 사무실을 지었어요. 컴퓨터 등도 설치 했구요”라며 “이전에는 카카오톡을 이용해 주민들에게 공지를 했지만 밴드를 운영한지 3년이 넘었죠. 매번 마이크로 주민들에게 공지해봐야 어르신들이 잘 못 듣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은 마을에 없으니 또 못 듣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밴드를 운영하고 지금 약 70명 정도가 활동을 해요. 시정사항 등에 공지를 하면 젊은 친구들이 읽고 나서 돕거나 또 어르신들에게 전달을 해 주죠”라며 “더욱 원활한 소통이 되는 것 같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이장직을 그만두기 전에 후배 이장을 꼭 키우고 가겠다는 서 이장은 마을의 젊은 청년들에게 말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라고…

마을회관을 나와 돌아가는 길. 서 이장의 말을 곱씹어본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그의 심성은 대나무의 곧은 심성과 참 많이 닮았다. 죽림마을 대나무 숲에는 주민들을 위한 서경수 이장의 많은 고민들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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