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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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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2  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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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우리 집 응접실에는 책이 많다. 베란다를 향하는 창을 제외한 세 개의 벽마다 책은 빼곡히 들어섰고 심지어 식탁 옆 벽면과 방 입구의 벽에 이르기까지 물샐 틈 없이 들어서 있다. 아이들 방에도 내 방에도 레스토랑이 있는 방에도 책은 가득하다.

책으로 둘러싸인 응접실 가운데에는 긴 탁자와 의자 네 개가 놓여있는데 현관에서 방으로 들어가려면 이들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나야한다. 응접실이란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이지만 정작 손님이 오면 머뭇머뭇 탁자에 앉히거나 대충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어떤 사람은 책이 아무렇게나 쌓인 거실을 보며 “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나봐요 ? ”하며 묻는 적도 있었는데 나는 난감해하는 집사람을 보며 터질듯한 웃음을 애써 참기도 했다.

나는 집에 책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책에게 빼앗긴 공간을 말하고자 한다. 집에 책이 많아진 것은 20 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혼살림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집사람이 처녀시절 모아둔 책이었다. 처음 책의 양을 보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사치품이 아닌 책이란 것이 오히려 신선했다.

문학, 철학 비평들이 주류를 이루는 많은 책들은 비록 낡았지만 평소 내가 흥미를 느끼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도시에 살다보니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었고 그 때마다 책이 문제가 되었다.매번 책이 든 무거운 박스를 들고 아파트 계단으로 옮기고 다시 정리하다보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래서 이사 계획이 잡히면 나는 우선 오래된 내 소유의 책부터 버렸고 집사람에게 낡은 책은 정리해 줄 것을 요구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집사람은 그럴께요 하며 내 말에 순순히 긍정하며 이해해주었다. 그러나 흔쾌한 대답과는 달리 정리된 책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을 뿐 내 눈에는 항상 그대로인 듯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생겨나면서 월부로 사놓은 수십 권의 동화 전집부터 육아에 관련된 책에 이르기까지 책은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그래서 이사를 하더라도 우선 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먼저 생각했고 평수가 작은 집이면 베란다를 거실로 꾸며서라도 책을 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책 때문에 좀 더 넓은 집을 꿈꾸기도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간편한 세상인데 언제까지 낡은 책을 안고 다닐거야 ? ” 하며 퉁박을 주기도 했지만 집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란 말로 받아넘겼다.

디지털 시대에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아날로그 시대의 물건들이 언젠가 큰 역할을 할 것이란 나름대로의 예측 때문이었을까? 집사람은 전축, 레코드판,카메라 등 오래된 것들을 쉬이 버리지 못했고 좋은 책이 있으면 낡은 것이라도 반드시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파주에서 광양으로 이사 올 때는 대형 트럭 두 대를 꽉 채우고도 넘쳐서 내가 정작 아끼고 좋아했던 화초들이나 나무들은 이웃집에 나누어 주어야했다. 책이 가득한 응접실을 바라볼 때마다 책에게 잃어버린 공간, 티브나 음향기기가 벽 가운데 놓이고 반쯤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생각나곤 했지만 여러 해 익숙해지다 보니 뭐 크게 아쉽지만은 않다.

이젠 책들로 인해 아무리 넓은 집도 좁게 살 수 밖에 없고 내가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책장에는 세계의 고전문학에서부터 현대 소설 시집 수필 의학 종교 철학 동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데 그들은 항상 나에게 뭔가를 진지하게 전해주고 싶은 표정이다.

간혹 책마다 또렷하게 자신을 어필하듯 내민 다양한 제목들에서 작가들이 지나온 거칠었던 세월과 영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내 미지근한 인생도 뭔가 저들 대열에 올려놓고 싶은 욕망이 일곤 하지만 그러기엔 역부족이란 것을 냉정하게 시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으며 소소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얻어지는 생각들을 기록하며 꿈을 이어가는 것이 내가 사는 즐거움이기도하다.

그러나 저 많은 책들 가운데에는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은 데 그들이 나에 대해 너무 몰염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책 가운데에는 겉은 물론 속 재질이 바래지고 활자체가 작아서 읽기에 불편해진 낡은 책들도 상당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엿볼 수 있고 그 시절의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고 책은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고 하지만 책은 외형만으로도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기도하다. 책이 많다보니 책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해본다.

언젠가 책이 주제가 된 모텔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넓은 로비에서 책에 빠진 집사람과 아이들의 옆모습이 참 아름답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은 책으로 채워진 펜션을 운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자연이 아름다운 산속에 로비를 책으로 둘러 세우고 책을 보면서 휴식하며 휴가를 즐기는 여행객들을 상상해본다. 내 삶의 공간에서 고객들이 책으로 인해 평온을 얻고 영혼을 살찌우며 나는 수입까지 올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되고 알찬 일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내 공간을 무의미하게 잠식했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나에게 조금씩 의미있는 생각들을 키워준 듯하다. 나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협박에도 굽히지 않고 버티어 낸 집사람은 책의 이러한 가치를 알고있었던 것일까 ?

앞으로 우리 앞에 몇 번의 이사가 더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선한 고집스러움에 감사한다. 꿈이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익숙해지고 오래 간직하면 화답하듯 커지며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도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을 이젠 감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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