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광양 문화원 부원장

이종태 광양 문화원 부원장

‘행복’이라는 말은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우리와 늘 함께하는 공기나 물처럼 일상에서는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 따라 그 의미가 변천하고 사람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단어같이 생각되면서도 또 어찌 보면 쉽게 정의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 명문대 유명강의 1위가 행복강의라 한다. 희망에 찬 황금개띠의 새해를 맞아 매일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처럼은 못해도 건강을 위해 1년 또는 2년에 한번쯤 건강검진을 하듯 행복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해볼까 한다.

먼저 서양의 역사 속에서 행복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찾아보자. 유럽인들은 밀기울 냄새 나는 빵과 감자 몇 알에 일상을 의존하면서도 오직 신에 의한 구제만을 기원하며 천년 이상동안 자칭 암흑의 시대를 살았다.

흑사병과 식량기근으로 거의 3분의1 이상의 인구가 죽어나가고, 중국의 발전상을 전해 들으며, 신대륙 등 새로운 삶터를 찾아 헤매면서, 행복의 다양성과 구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부터 금은 등 귀금속과 설탕, 향신료, 고무 등 많은 물자를 수탈해오면서 90%이상의 국민들이 감수해온 농노적 고달픈 삶을 미개발국 백성에 떠넘기고 풍요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르네상스라는 문화운동을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문예부흥 운동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해간다. 동양의 인쇄술이 그 발명의 역사가 빠름에도 불교 경전이나 국가시책 등의 제한된 용도에 한정되었으나 서양은 대중을 상대로 한 기술과 지식의 보급에 중점을 두어 그 꽃을 피웠다.

산업혁명으로 근대산업사회의 중심이 된 유럽은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아편전쟁으로 세계GDP의 30%를 점하던 중국 청조의 축적된 비단•도자기•차(茶)등의 부를 송두리째 빼앗으며 명실 공히 세계의 중심이 된다. ‘백가쟁명’이 차지했던 사상적 논쟁의 자리는 ‘계몽주의 철학’으로 대체되었고, 인간과 사물에 대한 폭넓은 탐색과 해석 및 정의, 그 이름 지어짐은 그들의 전적인 독점이 되었다.

행복에 대한 정의 또한 그들의 진취적이고 활발한 생활만큼이나 다양하게 정의되고 변화되어왔다. 물질적 풍요, 의미 있는 삶, 성취, 자아실현, 부족과 고통이 없는 일상, 사랑 등은 자주 등장하는 행복을 대표하는 어휘가 되었다. 여기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나 행복에 대해 많이 생각해온 분들의 주장을 음미해보자.

물론 상반된 주장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가장 상충된 사례는 돈의 유용성에 대한 견해에서 자주 발생한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나간다.”는 극단적인 물질위주의 주장이 있는가 하면, “행복은 소박하고 평온한 일상에서 온다.” 는 주장도 있다.

‘국민총생산(GDP)이 10% 증가하면 행복지수가 0.3%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는가 하면, ‘국민총생산(GDP)이 1만불이 넘으면 행복과 부의 관계성은 미미해진다.’고도 한다. 미국이 12천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19년의 추적조사에서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학생그룹이 제일 불행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런던 타임즈가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공모해 보았더니 1위가 ‘모래성을 막 완성하고 만세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마음’, 2위는 ‘산고의 고통을 겪고 낳은 첫아이를 품에 품은 산모의 흐뭇한 마음’이라고 응답하였다 한다.

큰 바램이나 의도 없이 맞는 따뜻한 감정이 있는 성취의 소중함을 느낄게 해 준다. 하버드대학이 72년간을 ‘무엇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가?’라는 질문을 추적한 끝에 그 답으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제시한다.

먼저 ‘고난을 받아들이는 성숙된 자세’와 ‘배움’을 꼽고 있다.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없으며 그 결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고양하며 맷집을 키우는 노력, 고난 속에서 좌절하지만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찾는 지혜 등에 따라 다시 일어나는 동력이 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움은 삶의 자양분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는 힘이 되고 “행복은 외적조건이 아니라 내적 자율의 문제임”을 가르쳐준다. 배움은 어휘의 이해력과 표현력을 높이고 오감이 예민해져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커지며 자연을 대하는 섬세한 감각과 지혜와 경외심을 키워 행복의 질을 높이고, 느닷없는 문제에 대처하는 힘도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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