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틀렸어? 그래도 귀엽제?”

‘고스모스’, ‘메화꽃’, ‘쿡화’

꽃 이름 적기가 숙제로 나온 날, 노란색 연필을 잡은 김금순(90)어르신은 골똘히 생각한다. “아이고, 세상에나 꽃 이름 적는 것도 이렇게 어렵네” 애꿎은 종이만 뚫어져라 보는 김 어르신. 장장 1시간 동안 적은 단어는 딱 세 개. 전부 다 정답이 아니다. 하지만 김 어르신은 즐겁다. 비록 단어는 ‘오답’일지라도 김 어르신의 인생이라는 단어에서는 ‘해답’이다.

김금순 어르신이 적어온 인생 한 획

꽃다운 16살, 시집을 갔다. 하동군 양보면이 고향인 김금순 어르신은 당시 “지금 시집 안 가면 일본으로 끌려간다”는 어머니의 말에 선택권이 없었다.

중매로 만난 남편은 키도 크고 인물도 훤칠했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툴렀던 남편이지만 남편으로 6남매의 아버지로 존경하고 존중받았다. 하지만 아리따운 아내와 핏덩이 6남매를 남겨둔 채 남편은 먼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김 어르신은 태연자약했다.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내는 강한 어머니가 되어야했기 때문이다. 김 어르신은 “힘들었던 그때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올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오기 마련이다. 김금순 어르신은 “다 팔자가 아니겠나”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남편을 여의고 김 어르신은 기사 식당 주방에서 일했다. ‘요리왕 김금순’처럼 김 어르신의 손끝을 만난 모든 식재료들은 별다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깊은 맛을 냈다. 순식간에 기사 식당은 순식간에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자자해졌다. 1년 365일 내내 식당에서 일을 하며 6남매를 먹여 살린 김 어르신은 피곤에 찌들어도 틈틈이 글공부를 했다. 쓰기는 부족해도 읽기만큼은 만점이다.

한글교실 ‘졸업’이라는 큰 선물

“아이고. 뾰족한 모자를 씌우고 화장을 시키고, 쑥스럽구만”

받아쓰기 종이를 붙잡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헤매던 김 어르신의 제대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현재 중마노인복지관을 다니고 있는 김 어르신이 한글교실 졸업장을 받아낸 것이다. 드디어 해냈다. 김 어르신은 “잠시 서울 아들집을 다녀오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했는데, 졸업을 하게 돼서 기분이 좋다”며 “단어를 몰라서 매일 밤 손자, 손녀한테 물어보고 귀찮게 했었는데, 손자, 손녀들한테 제일 먼저 자랑쳤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세월이 만들어낸 깊게 파인 주름과 흰 머리가 무색하다. 김 어르신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글공부를 할 계획이다.

“우리 아들딸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편지를 한 장씩 써주고 싶다”며 “예쁜 편지지에 고운 색연필로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적고 싶다”고 들떠했다. 구순을 맞이한 김금순 어르신의 인생이 삐뚤빼뚤 공들여 적어 놓은 ‘메화꽃’처럼 향기로운 향만 풍기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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