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은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해”

송재승 통장님

태인동은 섬진강 하류와 광양만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약 1640년부터 김 양식이 시작된 곳이다. 1981년 섬의 일부가 매립돼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기 전에는 수산물 양식의 최적지로 꼽히기도 했다.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언 날, 금호대교와 태인교를 지나 태인동 9통 용지마을을 찾았다.

용지마을회관 외관

광양시지에 따르면 용지마을은 주변 산세가 옥녀(玉女)삼발형이라 해 과부가 머리를 풀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형국으로 어머니가 근심 없이 아기를 안으면 지역이 크게 발전 될 것이란 말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왔다. 용지(龍地)란 옛날 마을 앞 개천둠벙에서 용이 머리를 내밀고 나왔다는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김 양식법을 최초로 개발한 김여익도 용지마을에 처음 자리 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지마을은 약 350세대에 800여 명의 인구수의 자연부락으로 대부분 광양제철소에 근무하거

용지마을 전경

나 자영업 등을 하며 살고 있다.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말을 해야지. 기자님도 한잔 드시오”

송재승 통장은 막걸리를 내려놓자마자 기세 좋게 꺼내들었다. 덕분에 대낮부터 조촐한 술판이다. 올해로 통장직 5년차를 맞이한 송 통장은 80년대부터 새마을운동은 물론 항운노조와 농사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지금은 농한기지만 현재도 약 30여 마지기의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태인동 통장협의회 회장직도 수행 중이다.

송 통장은 “우리 마을은 예부터 충‧효‧예를 중요하게 여겨왔던 마을이에요. 옛 문화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가지고 있어 김 제조 체험, 용지큰줄다리기, 당산제도 꾸준히 해오고 있구요”라며 마을의 자랑을 시작했다.

송 통장은 이어 “아주 오래전에는 여름에는 농업과 어업을 하고 겨울에는 김을 만들어 부촌이었죠. 주민들이 서로에게 늘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지는 정이 넘치는 마을이기도 해요”라고 덧붙였다.

송 통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늘 미안해요. 우리 마을은 포스코와 가까워 환경 등의 문제도 신경 써야하고 주거환경개선 등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데, 복지 등 관련 예산이 적어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거든요”라며 “주민들에게 많은 문화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데 그것도 늘 어렵네요”라고 말했다.

회관에 보관되어있는 줄다리기 물품들

용지마을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용지큰줄다리기’다. 용지큰줄다리기가 타 지역과 조금 다른 것은 줄다리기가 대부분 풍농과 건강을 기원하는데 용지마을은 김 풍작을 기원한다. 또한 대부분의 지역이 마을과 마을 또는 읍‧면 단위로 행해지는데 용지마을은 한 마을에서 아름드리 줄을 사용한 큰줄다리기가 250여 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1993년 시작해 해마다 꾸준히 지역 곳곳에서 진행해오던 용지큰줄다리기는 지난해는 AI확산 여파로 인해 취소됐다. 올해는 설 지내고 마을의 의견을 물어볼 예정이다.

송 통장은 “마을주민들이 전통민속놀이 재현을 더 잘 연습할 수 있도록 공연연습장이 있으면 좋겠네요”라며 “마을회관도 1층을 개방해 정보화교실도 만들고 싶고. 이장직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옛 문화를 계승하도록 노력하며 주민들 이야기를 더 잘 듣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용지마을은 늘 섣달 그믐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이른바 ‘할매신’께 마을의 풍요와 건강을 비

애기당산나무 뒤로 삼봉산이 보인다

는 것인데 원래 있던 당산나무가 바람에 쓰러져 현재는 새로운 나무를 심어뒀다. 애기당산나무 뒤로 삼봉산이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한때 섬이었고, 농‧어업에서 산업으로 바뀌고, 마을의 어르신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지만 괜찮다. 용지마을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옛 문화를 지키고 계승할 것이며 애기 당산나무는 먼 훗날 아주 고풍스러운 노거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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