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보고, 토종야생화도 보고, 밀린 시도 쓰고

지리산 시인 이원규, 신희지 부부

눈에 띠는 말총머리와 콧수염, 그 첫 만남

사람 좋아 보이는 이원규 시인을 처음 만났 던 때는 거슬러 올라가 2007년이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보자는 당시 다짐을 술 한 잔에 흔들어버린 이 시인은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 수업을 강의하던 교수였다.

이 시인은 강의 중에 욕설도 서슴지 않았고, 정권에 대한 날선 비판도 가감이 없었다. 그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가까운 친구와도 같았다. 사실 늘 학생들과 재밌게 놀고, 술자리를 즐 겼던 그 시인을 ‘한량’ 혹은 흔히 말하는 ‘나이 롱’ 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가벼워 보이면 서도 진중했고, 자신의 일에는 늘 기꺼이 최선 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이후로 그에게 단 한 번 도 함부로 말한 적이 없다.

콧수염을 찾아 다압으로, 고알피엠(高RPM) 여사와의 첫 만남

그는 다큐 촬영을 위해 나는 취재를 위해 광 양전어축제를 찾았을 때였다. 어디선가 아주 낯 익은 콧수염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대학을 졸 업하고 수년이 지난 후 그렇게 다시 만났다.

다압면 신원리에 위치한 예술곳간 몽유에서 만난 곳간지기 신희지 여사는 넘치는 긍정적 에너지로 ‘고알피엠 여사’라는 애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지리산행복학교의 교무처 장이기도 하다. 이 부부의 특성상 이 시인과 신 여사는 늘 서로의 삶이 바쁘다. 부부 모두 여러 가지 활동과 직함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그저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구례‧하동‧남원‧함 양 등 21년 가까이 지리산 골짜기만 찾아다니 며 살았다. 집을 사지 않고 빈집을 얻어 사는 것 이 나름대로의 철칙이기도 했다. 신 여사는 “매번 지리산을 등지고 살았어요. 그러다 이 시인에게 ‘여보, 난 진짜 한번은 지리 산을 바라보고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죠”라며 웃었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올해로 16년이 넘어가 는 이 부부에게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신 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짚고 넘어 가야 돼요. 내가 사랑에 빠져서 이불 들고 온 걸 로 알고들 있는데 그게 아니에요! 나는 그때 그 냥 글 쓰려고 알아보는 중에 방 한 칸 내어준다 해서 왔는데 이 사람이 날 가뒀지. 이불도 이 시인 집에 있던 이불이 너무 낡고 그래서 나 쓰려 고 가져왔던 거에요. 나 쓰려고!” “허허. 그냥 가만있어. 그렇게 말해봤자 힘만 빠진다니까” “아니 가만있으면 이게 진짜 사실처럼 된다 니까? 내가 진짜 비하인드까지 다 말하면 당신 큰일 난다 진짜” 부부는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사실이야 뭐 두 사람만 알겠지만 다툼을 가장한 부부의 얼굴에 는 미소만 가득했고 커지는 목소리는 애틋함만 넘쳐났다.

어느덧 다가오는 봄, 낙장불입 시인과 고알피엠 여사의 앞으로의 이야기

이 시인은 일이 많이 밀렸다. 지난 2000 부터 지리산 실상사 수경스님과 함께한 도보순례‧삼보일배‧오체투지순례 등으로 전국 2만 5천 리를 10년 넘게 걸었다. 그 덕분에 출판했어야 하는 책들이 수권이 다. 출판은 하지 않고 쓰기만 했으니 당연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봄에 매화가 피면 또 사진 찍고 나서야 지. 광양에서는 소학정에 오래된 매화나 무가 한그루 있는데, 그게 시작이야. 거기 서 꽃망울 하나가 탁 터지면 광양 전체로 매화가 퍼져나가지. 그동안 찍은 사진 개 인전도 준비 중이고, 그 전에 밀린 원고들 정리하느라 요새 맨날 날을 새” 신 여사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던 지리산 행복학교 개강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리한 행복학교는 지역과 어울려 문화 예술을 공유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다 양한 커리큘럼을 마련해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로 이미 지난 9일부터 신입생 모집에 들어가 3월 9일까지 입학 신청을 받는 중 이다. 미술‧풍경사진‧시극 등은 물론 어른놀이‧길걷기‧된장요리‧한옥짓기 등 듣기에 생소 하지만 흥미돋는 수업들로 가득하다. 자세한 사 항은 지리산행복학교의 공식 다음카페를 활용 하면 더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신 여사는 “늘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만 바 라보며 살다가, 지리산도 보고 섬진강도 보니 더 좋아요”라며 “게다가 백운산에 안겨있기까 지 하니 더 할 나위 없죠”라고 웃었다. 이 부부는 또 언젠가는 광양을 떠날지 모른 다. 그래도 늘 그랬듯이 지리산 골짜기 어딘가 일 것이다. 나눈 이야기는 많지만 종이가 너무 적다.

이 시인이 소학정 마을의 첫 매화를 보고 쓴 시를 한편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또 어디선 가 꽃이 피듯이, 광양에서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 피어나고 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