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 가사歌辭로 노래하다-백숙아 문학박사

지난해 한여름 지인들과 찾았던

매천이 다니던 봉강 새재길

스승 찾아 구례로 오가던 그 길

덤불로 뒤덮인 입구를 헤집어가며

설렌 가슴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니

작은 오솔길이 반가이 맞아주어

일행들 하나같이 가슴 뭉클했다

사람나무 돌부리 무엇 하나 놓칠세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달새마냥 지지대니

풀잎에 맺힌 이슬도 또르르 노래했네

산언저리 따라서 얼마나 걸었을까

폭포가 손 내밀어 선남선녀 씻어주니

콧노래 흥얼대며 매천이랑 마주한 듯

매일매일 이 길에서 매천과 나뒹굴던

산딸기 벚나무 맹감나무 도토리

갖가지 꽃 풀과 새들도 그대로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낙엽 지니

무엇 하나 사라질까 모질게 붙잡고서

매천과 함께하던 그날들 삼키며

변화무쌍한 그 풍경 오롯이 주워 담아

그리움 새기며 매천을 추억했지

청백리로 유명했던 매천 황현 선생

10대조 진進은 임진왜란 군 공로자

8대조 위暐는 병자호란 의병 대장

남원에서 대대로 가세를 이어오다

조부 직稙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자

양반체면 불고하고 상업으로 재산 모아

광양 봉강 석사리에 가문을 바로 세워

애국애족 매천 집안 드디어 득의하니

손자의 과외 선생 집으로 초빙하여

헌신적인 뒷바라지 매천 학문 일취월장

문리를 터득하여 동년배를 가르치니

그의 명성 10대에 인근에 널리 퍼져

왕석보 학당에 입문하게 되었지

14세 때 향시에서 순식간에 답안 채워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의 박수갈채

17세 백일장에서 문명文名을 떨치니

‘광양의 황신동’은 널리널리 소문나고

20세에 근체시 110수를 완성하여

《원초첩화圓蕉穕畵》첫 시집 세상에 내놓으니

사회 모순 고발하고 농촌 현실 시詩로 읊어

의로운 시인으로 세상에 이름났다

화려한 시를 들고 서울로 올라가

왕실 신임 두터운 이건창 찾아가니

추금秋琴 강위姜瑋 창강滄江 김택연金澤榮

좋은 벗들 구슬 꿰듯 이어지고

허물없이 벗하여 지란지교芝蘭之交 맺으니

1850년대 세대들이 문단을 이끌어

도타웠던 영재와 창강하고 매천이

‘한말삼재韓末三才’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아껴주고 밀어주며 우정을 과시하니

대학자들 찾아와서 현실인식 배움 청해

비현실적 도학에 동의하지 않더니

노사학파 기정진과 사상적 교감하다

떠나가는 매천을 애달프게 잡는 노사

쉽게 얻은 것이란 잃기도 쉬운 법

연잎 위 이슬처럼 못내 이별 청하였다

서울 왕래 10년 만에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뽑혔건만 촌티난다 차등 당해

부패한 과거제도 포기하고 낙향하니

부친 엄명 떨어지고 성균관 생원 되어

정범조鄭範朝 도움으로 생원 1등 뽑혔으나

그마저 뒤로한 채 고향으로 귀향하여

구례 만수동에 이거하여 칩거하니

정부와 시인들과도 연락 끊고 두문불출

열강의 침탈과 조정의 매관매직

“그대들은 귀신나라 미친 사람 무리에 섞여

귀신이나 미치광이가 기어이 되려는가!”

월곡에서 16년을 무던히도 은거하더니

《매천야록梅泉野錄》《오하기문梧下記聞》

《동비기략초고東匪紀略草藁》저술하고

온 힘을 쏟아서 후진양성 하였다

매화나무 심어놓고 개울에 옹달샘까지

초옥에서 보리밥 열무김치면 어떠랴!

선비 절의 상징하는 매화와 샘을 합해

매천梅泉이라 자호하고 구안실苟安室을 세우니

눈앞이 섬진강 백운산 자락이라

구례군 광의면 일립정一笠亭 개방하곤

후학들을 모아놓고 강독하고 토론하며

열정과 그윽한 붓의 향기 뿜어내고

봄철이면 매화가 향기를 더하니

매천의 그 열정 무엇에다 비길까

1899년 언사소言事疏에 현실을 담아 올리니

첫째가 언로言路 개방

둘째는 법령 신뢰회복

셋째가 기강진작

넷째는 절약검소 재원확보

다섯째가 척신축출

여섯째는 공정한 과거 시행

일곱째가 책임행정

여덟째는 군제 개혁

아홉째는 공정 세금 거출이라

내수자강內修自强 굳건해야

외세 타진 가능하고

1902년 광의면 월곡으로 이사하니

현세에 한걸음 더 다가서려는 마음에다

조그마한 뜻 이루려한 나름의 변화였지

동학농민혁명 충격과 위태로운 국가 안전

올곧은 지식인의 방황에 좌절하고

월곡은 스승 왕석보가 거주하던 곳

스승의 아들 사천과 사찬은 동학이며 친구라

절명할 그때까지 8년을 기거하며

성인당成仁堂 대월헌待月軒 편액을 걸어두고

사대부의 인仁 이루려 무던히도 애쓰던 곳

1905년 을사조약 체결되는 소식 듣고

실의와 충격으로 슬픔을 달랠 길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비분강개한 심정을

〈문변삼수聞變三首〉와 〈오애시五哀詩〉에 담았다

김택영은 중국으로 망명하길 권했으나

향토수호 의지와 우국건설 일념에다

암담한 시국 한탄 울분을 참지 못해

절의와 지조를 지키기로 맹세했다

절의지사 매복梅福 고염무顧炎武외 10명을

10폭 병풍 만들어 놓고 때때로 기렸으니

난세에 심신을 바르게 다짐하고

1908년 제자들과 호양학교壺陽學校 세웠으며

계몽운동 앞장서서 신학문을 전파했다

1910년 경술국치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절명시 4수와 유서를 남겼으니

나라 망한 날 책임지고

죽는 선비 한 명 없다면

이 어찌 애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올바른 마음씨와

부지런한 독서 지양 당부하며

기어이 순절을 택해 만백성의 귀감이 되고

조선의 마지막 선비 정신 지키고 가셨다

지식인 양심에다 의로움을 남기고

체구는 작고 잔병치레 많았던 매천

정신은 여느 장골보다 용감하고 강직했다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시름하니

무궁화 이 강산은 이미 사라졌단 말인가

가을밤 등잔불 아래 책을 덮고

수천 년 역사를 되돌아보니

한평생 지식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웠다

나날이 변해가는 우리네 인간살이

배움과 삶이란 늘 하나 아니던가!

세속을 멀리하고 온고지신溫故知新 일삼았던

매천의 선비 정신 강이 되고 바다 되어

수백 년 지나도록 이 땅에 영원하길

백숙아
전남 광양 출생, 순천대학교 강의전담 교수, 한국가사문학학술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시가문화학회 총무이사, 한국시조시학회 지역이사, 『독서와 표현』공저, 2017.『광양, 사람의 향기』공저, 2017.《면앙정 송순 한시 연구》외 논문 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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