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시민칼럼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이 읽히고 회자되는 이유는 지금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열전의 첫 편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백이열전’이다. 다음은 백이와 숙제가 사람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굶어죽기 전에 부른 노래다.

登彼西山兮(등피서산혜)

저 서산에 올라

采其薇矣(채기미의)

고사리를 꺾어 먹자꾸나

以暴易暴兮(이폭이폭혜)

포악한 것을 포악한 것으로 바꾸었으니

不知其非矣(부지기비의)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神農,虞,夏忽焉沒兮(신농,우,하홀언몰혜)

신농(神農), 우순(虞舜), 하우(夏禹)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렸으니

我安適歸矣(아안적귀의)

우리는 장차 어디에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于嗟徂兮(우차조혜)

아! 우리는 죽음뿐 이구나

命之衰矣(명지쇠의)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사기’의 70열전 가운데 사마천의 자전적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열전인 ‘태사공자전’에는 ‘백이열전’에 대하여 “말세에는 누구나 이해를 다투었으나 백이. 숙제만은 한결같이 의(義)를 존중하여 나라를 양보하고 굶어죽어, 천하가 그를 칭송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백이열전을 저술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슷한 이야기는 더 있다. 중국고대 성군 요(堯)시대에 살았다는 허유는 요황제가 자기에게 보위를 물려주려 하자 귀가 더럽혀졌다고 냇가에 가서 귀를 씻은 후 산으로 들어가서 깊이 은둔하였고, 소부는 허유가 귀를 씻은 냇물이 더럽혀졌다 하여 몰고 온 소에게 마시지 못하게 하고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한다. 하(夏)나라의 변수와 무광은 부끄러움에 투신하기도 하였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목도하는 세상은 어떤가. 자신을 내세우기 주저함이 없는 사회다. 어떤 이는 없는 자랑거리도 만들어 사람들에게 외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리를 탐하며, 어떤 이는 자리를 놓고 다투는 상대를 비방하는데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나 역사는 두고두고 권세를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동양에 ‘사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헤로도토스의 저술 ‘역사’가 있다. 난세에 왕을 하려는 자가 없자 마을 사람들은 바보를 임금에 앉히려 한다. 처음에는 바보도 완강히 거절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먹을 것을 풍성히 걷고 안락한 집을 지어주자 바보는 마지못해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흉년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바보왕’은 해보니 이런 좋은 자리가 없다며 거절한다. 끝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계책은 왕을 죽이는 것이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바보 왕의 이야기이다.

한(漢)의 가자(賈子)는 “탐욕한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의열(義烈)한 사람은 명예에 목숨을 걸며,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범용(凡庸)한 사람은 제생명이나 탐하고 아낄 뿐”이라고 했다. 또 공자(孔子)는 말한다. “군자(君子)란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 백이와 숙제도 이와 다름없다”고.

오늘, 혼탁한 세상에 이름을 새기려는 이들과 군자를 기다리는 모든 이가 장구한 역사에 빗대어 먼저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아야 한다. 무릇 봄날 새로운 싹은 모두에게 솟았으나 차가운 계절에 이르러야 푸름이 돋보이는 법이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