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미경 독자

▲ 황미경 독자

이 년 정도 되었을까? 혼자 등산 가다 남자 등산객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신경이 바짝 쓰인다는 말에 지기는 불쾌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 등산객이 당한 사건은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그로 인해 남자 등산객 전체가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간주되는 것은 과도한 적대감이기에 수용할 수 없다며 언짢은 기색을 확연히 드러냈다.

그러다 몇 달 뒤, 또렷하지 않지만 또 다시 여자 등산객이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지기는 자신이 했던 말은 기억에도 없는 듯 “혼자는 절대 등산가지 말아요.”하며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어찌 생각이 바뀌었냐고 물어보려다 입을 앙 다물었다. 당연한거란 생각이 재차 들어 굳이 변화된 생각의 까닭을 들을 필요가 없지 싶었다.

삼 년 전, 큰 아이가 실습 다니며 늦은 귀가를 하거나 공부를 마치고 자정 전후로 귀가할 때면 완벽하게 조는 날을 빼고선 늘 마중을 나가려 애썼다. 그런 사실을 듣게 되면 지기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면 되지 과잉보호 아니에요?”하며 툭 하고 한 마디를 던졌다. 진한 어둠만큼 오래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딸의 안전한 귀가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데 당황스럽고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함께 볼 일을 본 후, 우리의 귀가 시간이 아이의 귀가 시간과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아직 공부하고 있죠? 데리러 가게 전화하세요." 하거나 가로등이 없거나 인적이 드문 곳에선 "여긴 위험해." 하며 혼잣말을 한다. 또한 자정 넘어 귀가하는 첫째를 염려해 주차장을 어슬렁거릴 때도 예전처럼 타박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나의 엄마는 그랬다. 깜깜한 밤길 다니는 걸 유독 무서워하는 막내를 위해 늦은 밤 귀가할 때는 큰길가 까지 나와 이제나저제나 기다려 주셨다. 하차했던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취객이 말을 걸며 따라올 때 심장은 벌렁거렸고 다리는 후덜거렸지만 힘껏 내달리며 저기쯤 가면 엄마가 기다리고 계실거란 믿음 때문에 숨이 차도 내쳐 달릴 수 있었다.

딸과 엄마의 관계, 딸과 아빠의 관계, 딸을 둔 부모들은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남자들은 잠재적 위험 집단이 되었으며 "남자들은 동물이야, 남자들은 늑대야!"를 외치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들을 둔 아빠인 지기는 그런 태생적 두려움으로 뭉친 나를 이해하기보다 ‘남자’라는 특정집단 모두가 문제 있는 것처럼 일부의 사례를 합리적, 객관적 까닭 없이 일반화시키는 일에 대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다수의 무고한 남자들을 대신해 화를 내었다.

그러나 어찌된 게 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여자들이 변고를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일하다 죽고, 화장실 가다 죽고, 계단 내려가다 죽고, 등산 하다 죽고, 차 타러 가다 죽고, 집 안에 있다 죽고, 헤어진다 말해서 죽고, 사귀지 않았다고 죽고, 부자라서 죽고, 무시했다고 죽고 등 뭐 말이 안 되는 사건들의 표적이 여자라는 사실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의 출입이 뜸한 시간이나 장소에서 ‘남자’와 맞닥뜨리는 여자들의 시선엔 경계심과 막연한 두려움이 엷게 내려앉게 되었고 그것은 본능적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운동이나 훈련을 받은 여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근골격계의 발달 정도가 남녀가 확연히 다르고 힘의 강도 역시 차이가 있기에 대부분의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체력적으로 약하다. 그렇다고 매번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야 할 합리적이고 타당한 까닭이 있단 말인가! 일부의 사례가 일반화의 오류가 될 때까지 남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딸을 둔 아빠들도 짐승보다 못한 남자가 되어가도록 다수의 무고한 남자들의 세계는 자신들의 실체를 어떻게 규명 짓도록 대처했는가!

근래 수업을 하면서 남녀 학생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Me Too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하고 있다. 때에 따라 남자들을 특정한 사물이나 행동을 중심으로 출입제한 하는 대상으로 분류하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민낯이 지속되어 온데다 너무나 역겨운 일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성에 관한 의식은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다각도로 얘기 나누는 사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Me Too 운동을 여자만 할 게 아니다. 잠재적 위험 집단이 된 남자들이야말로 일반화의 오류로 자신들을 매도한다며 언짢은 낯빛을 보일 것이 아니라 동성의 남자들을 계몽시키고 철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뭔가를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with you' 운동으로 Me Too를 지지하지만 좀 더 경각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제비뽑기하듯 눈치 볼게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공동의 실천으로 행동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는 보고 듣기가 역겹고 비참하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