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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텃밭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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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5  22: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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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건너편에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다.
텃밭의 주인인 성훈할머니는 항상 우리 집 앞마당을 통해 그곳을 드나들곤 한다.

할머니는 늘 밭에서 움직이며 일에 집중하곤 했는데 그 모습은 산촌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밭은 작지만 우리집 창을 통해 철따라 변하는 풍경과 여든을 넘긴 할머니의 놀이와도 같은 일상을 바라보는 것은 무료한 내게 쏠쏠한 즐거움을 주곤 했다.

그곳에서 자라는 다양한 채소들의 푸르고 싱싱한 모습을 보면 때때로 내 마음 속에도 파릇한 기운이 넘쳐나곤 했다.

해마다 밭을 채우는 채소의 종류는 달라지는데 감자나 고구마 마늘, 상추, 고추, 배추, 무, 옥수수 콩 등 그들 중 어떤 것이 선택받게 될 것인지는 오로지 할머니의 생각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심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나 상추, 고추, 옥수수를 심기를 바랐지만 할머니의 선택은 늘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

키가 크고 작은 채소들을 골고루 심으면 풍경도 훨씬 풍성하고 조화로워 보일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어떤 때에는 내가 나서서 이런 저런 채소는 어떻겠느냐며 권유도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할머니는 당신의 그동안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내 뜻을 묵살하곤 했다.

선택은 언제나 할머니의 몫이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도 나의 정원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할머니에 의해 채소의 인생은 여러 해를 이어가기도 했고 단 한 해로 끝나버리거나 몇 년 동안 볼 수 없는 경우도 생겨나곤 했다.

할머니가 정성들여 키우는 채소는 우리집 식탁에도 영향을 미치곤 했다.

추수를 할 때마다 우리집 앞에 몰래 두고 가는 적지 않은 채소들(매번 수확할 때마다 그랬다. 절대로 두고 가시지 말라고 부탁해도 막무가내였다) 때문에 미안하고 황송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얼마 안 돼서..... 또는 별 것도 아닌데.....’ 하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미안해하거나 소녀처럼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햇동안 얼마나 힘들게 지은 것이란 걸 알고 있는 내게 할머니가 곁들이는 선한 겸손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염치없이 받아먹곤 했다.

참 이상도 한 것이 아랫 밭의 진수할아버지도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가영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수시로 우리 집 앞에 당신들이 키운 채소를 몰래 놓고 가곤했는데.......

처음엔 누가 두고 간 것인지 왜 얘기 하지 않는지 그런 것 때문에 오히려 신경이 더 쓰여지곤 했다.

심지어는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밝혀낸 적도 있었는데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키우지도 않으면서도 채소는 집안에 넘쳐나곤 했다.

요즘은 채소가 담겨진 바구니만 보고도 단 번에 어느 분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다.

한동네에 십여 년 살다보니 산촌 사람들의 특징이란 것이 산에서 얻어지는 나물이나 추수한 채소 또는 맛난 음식에 이르기까지 서로 나누는 일이 보편화되어있다는 것이다.

힘들이며 키운 채소를 이웃에 나누어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행위이기도 했고 내 것과 상대방 것의 경계마저 허무는 것이기도 했다.

마치 살면서 공유하는 공기와 물처럼 나누고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인정은 각별한 데가 있었다.

처음엔 밖으로만 맴돌던 우리도 그들의 활짝 열린 마음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것도 어쩌면 땅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넉넉함을 보고 배운 데서 생겨난 삶의 철학이 아닐까 ?

누군가 농사를 짓는 일은 천천히 삶을 알아가는 행위라고 했듯 산촌의 생활은 좀 더 살아보아야 이해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처음 귀촌하여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을 시작했는데 매번 잡초들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지 못한 채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잡초더미에 묻힌 밭을 바라볼 때마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버려진 듯해서 사람들 보기가 민망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자연을 너무 모르고 덤빈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땅을 마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짓는 일은 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어둑 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할머니는 밭둑으로 저만치 물러나 하룻동안 일구어 놓은 밭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펴진 흙 속에 당신이 흘린 땀과 흐뭇함과 앞으로의 기대가 한데 섞여있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과 앞으로 살아 갈 시간들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밭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평온해 보였고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할머니의 삶은 간결해지고 깊어지는 듯 했다.

나이 들어서 항상 손이 가고 마음이 가는 텃밭 하나를 곁에 두고 산다는 것은 그 어떤 인생보다 더 풍족하고 멋진 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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