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세풍교회 앞에 푸르게 밝히던 소나무 한 그루

아스라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무수한 과거와의 마주침을 경험하는 일은 여전히 짙은 안개의 강을 걷는 것처럼 아득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 혹은 아버지가 된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세월이 오래 묵힌 된장처럼 구수해 지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니까요.

어느 한 순간을 떠올린다는 건 참 아련한 일이지요. 팍팍하고 쉽지 않은 시대였지만 그 팍팍함도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살았던 어린 시절은 참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열심히 성실한 삶을 사셨던 아버지 덕분에 저의 어린 시절은 좀 나은 편이었지만 제 또래 아이들의 대부분은 풍족한 삶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습니다.

매일 도시락을 싸가는 일도 쉽지 않았고 바랜 검정고무신을 사시사철 내내 신고 다닌 친구들이 많았지요. 먹고 사는 일이 좀 편해진 지금 생각하면 참 팍팍한 유년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훨씬 풍족해진 지금이 그때보다 삶이 나아진 것인가 생각해보면 쉽게 긍정하기가 어려우니 삶에서의 만족을 찾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에 반해 추억할 수 있다는 건 그 시절의 신산스러움과는 별개로 가슴 한 켠을 훈훈하게 덥히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오랜만에 옛일을 떠올릴 수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제 앞에 있습니다.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사진 한 장인데요, 그 친구형제와 함께 그 뒤편에 있는 교회의 모습도 참 반갑고 새삼스럽습니다. 지금은 모습을 달리한 세풍교회입니다. 주일이면 성경책과 찬송가를 들고 교회에 가는 일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교회에서 나눠주는 빵이나 사탕이었을 겁니다.

올해로 문을 연지 60년을 넘긴 세풍교회는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주일학교에다 중고등부를 거치며 여전히 교회문턱을 넘는 사람들도 꽤 있지요. 믿음과 고향 교회에 대한 아련함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겠지만 그 시절 아이들에게 신앙심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머니를 따라, 혹은 아버지나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학교 이외에 또 다른 놀이터였던 겁니다. 어떤 아이들은 평상시 교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성탄절 때만 되면 교회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곤궁했던 시절에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행복한 기회였으니까요.

아마 이 사진이 찍힐 무렵 저는 아마도 까까머리 코흘리개였을 겁니다. 함께 코흘리개였던 어떤 아이는 지금 저 세풍교회의 집사님이 되었고, 지도교사였던 어떤 형님은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아마도 이 사진을 보면서 예배보다 나눠주는 사탕에 욕심을 내던 어떤 아이를 떠올리며 환하게 웃어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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