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숲길을 걸으며>

큰길가에 늘어선 아카시아 나뭇가지가 이따금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잎 사이로 하얀 꽃송이들이 치아를 드러낸 아이들의 얼굴인 양 해맑다. 이 봄날 나무들이 꽃을 피웠다는 건 희망하던 것을 이루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무들마다 송이 송이 매달린 꽃들이 귀하고 사랑스럽다 꽃 가까이 다가가니 코끝에 훅 끼쳐오는 향기가 친근하다.그러고 보니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의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다.

입 속에 달달한 아카 시아 꽃을 머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잎사귀를 떼어내며 웃었던...... 그때의 우리들처럼 꽃잎 주위로 모여든 많은 벌들이 흥겹고 시끌벅적한 잔칫집 드나들듯 앵앵거리며 꽃을 탐한다 꽃이 피고 벌들이 찾아오듯 동네 사람들도 한바탕의 바람일 듯 봄나들이를 떠나는 것을 보면 봄날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봄기운을 타고 오는 것일까 ? 요즘들어 우리 마을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푸른 나무들로 빼곡했던 골짜기마다 새로운 집이 생겨나는가하면 뜬금없이 산비탈에 낮선 전원주택 단지들이 생겨나곤 해서 무심히 지나치던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곤 한다.

인적이 없어 때로 쓸쓸한 산촌이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또 다시 산에 상처가 나고 쓰러지는 나무들이 생겨날까 마음이 쓰인다.

언젠가 눈앞에서 거대한 포크레인의 삽질에 파헤쳐지고 허물어지는 산의 몸뚱아리를 바라보며내 몸이 베인 양 가슴이 아팠고 동시에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한 번 드러난 상처가 다시 아물기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날을 먹먹하게 상처를 바라보아야하고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연을 향해 잔인하고 무지막지한 칼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대는 것 같다.

말없는 자연은 실상 우리 삶의 고단함을 조금씩 덜어주고 때로는 가까운 친구처럼 위로를 건네는 이웃인데도 말이다. 언뜻 무질서한 듯하지만 곰곰 살펴보면 자연 속에는 지나온 세월이 만들어낸 질서가 엄연히 살아있다.

산이나 들판에 아무렇게나 누운 바위와 몸통이 꼬부라진 나무들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비록 골짜기 옆으로 잡초들이 살다가는 옹색한 길일지 라도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있고 흘러간 세월이 녹아있다.

산 속 어느 곳이든 사람들의 잊을수 없는 이야기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자연이 문명의 삽질에 쉽게 훼손되는 광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넓은 호수를 지나 구불거리는 봉강 길을 타고 산촌에 들어오면 장쾌한 물소리가 힘차고 푸른숲 우거진 산들이 겹겹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니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흔들리는 지구와 예측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얼마나 든든한 자연인가 ? 읍내 사람들은 옛날에 비하면 내가 살고 있는 봉강 땅이 참 좋아졌다고 말하곤 한다.

읍내에 있는 학교에 다니려면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먼 길을 나서야 하는 수고를 곁들어야 했고 게다가 멀고 험한 골짜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보잘것없는 촌놈이 되어 읍내의 아이들의 지독한 텃세에 시달렸던 기억을 어른들은 추억처럼 말하곤 했다.

그 때는 어느 지역이든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고유한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낮선 사람 들이 그들의 틈을 파고 들기가 쉽지 않았다. 소위 심한 텃세 때문에 농촌이나 벽지에 살던 사람들은 읍내에 살던 사람들에 비해 힘든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촌이 도시의 배후에서 도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산소를 공급하고 맑은 물을 제공하는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하찮게 보이던 산촌이 이젠 도시 사람들에게는 은혜롭고 고마운 장소가 되었다. 해가 갈수록 도시를 떠나 산촌을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 갈 것이다.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마을에는 새로운 활력이 생겨나지만 마을과 사람들 사이의 낮설음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저마다 살아왔던 방식이 다르니 가까이에서 부딪히면서 점차 적응하고 어울려질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출발점이며 이웃이라는 새로운 관계 형성의 시작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뿌리를 내린 산촌 사람들은 자연을 그대로 닮아 있다.

항상 뿌린 만큼의 수확을 기대하며 혹시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더라도 내년에 다시 희망을 건다. 그러므로 욕심을 탐하지 않는 그들은 언제나 나무처럼 푸르고 긍정하며 사는 방법에 익숙 해져 있다.

그들은 친절한 산촌생활의 전문가이며 외지에서 온 이들이 모르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이웃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을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이웃집의 저녁 밥상에 오를 반찬까지도 꿸 수있는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도 나눌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뜸한 산 속에서 살아가는 재미는 그런 사소함에 있고 생각이 단순해질수록 생활의 만족감도 높아진다.

도시에 살았던 지나간 날을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쓸데없이 많은 걱정을 하며 살아온 듯하다.
내안에 들어 차있는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하며 산촌의 삶을 누리고 싶다.

행복이란 애써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자연스럽게 퍼져 나오는 아카시아 꽃향기처럼 다가가 마음에 꾹꾹 담아내는 것인 듯하다. 일상에서 욕심을 버리면 행복은 분명 그 뒤를 따라 생겨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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