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고 1학년 김시은

▲ 장성고 1학년 김시은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태어났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이 말이 요즘 들어선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미투운동을 기점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여성들은 얼마 전 3만 명이 넘는 인파로 몰카 반대 시위를 펼쳤다.

경찰들은 그들을 둘러쌌고, 의료팀이 챙겨온 약품 중에는 염산테러시 사용할 응급약도 있었다. 충격이었다.

정당한 시위를 펼치는데 염산테러를 걱정해야 한다는 게 무엇이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동안 무지했던 나의,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일들에서 여성차별, 여성혐오는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분명 있었을 법한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 오히려 더 무서워졌지만 그저 머무는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1반부터 4반까지 남자 반, 그리고 나머지 5, 6반이 여자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반은 6반이고, 나는 수학 B반 수업을 5반에서 듣는다.

여자, 남자 모두 그곳에서 똑같은 선생님께 수학 수업을 듣는다. (물론 시간을 다르게 해서 따로 듣는다.)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학 수업을 듣던 중 선생님께서 얘기를 꺼내셨다. 얼마 전 남자 반 수업을 하는데, 5반 친구 책상에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을 보고 미쳤다고 하더라.

그래서 무엇이 잘못됐냐고 여쭤봤더니 선생님께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도 페미니스트에요?” 였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책상에는 단 3가지의 여성 인권에 관한 문구가 쓰인 포스트잇들이 붙어있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는 당시 그 곳에서 나를 포함한 수업을 듣던 모든 친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고 이내 체념했다.

잘 생각해보니 이곳은 ‘한국’이었고, 그들은 ‘남성’이었다. 분노한 친구들은 (6반인 나는 이에 대해선 자세히 듣지 못하였지만) 다 같이 합세하여 그 친구의 책상에 약 20여 개 정도의 포스트잇에 여성 인권 옹호에 관련된 문구를 적어 아예 책상을 도배시켜 버렸다고 했다.

그 책상을 본 남학생들은 “내가 이걸 왜 봐야하냐! 찢어버리겠다! 지X하고 있다.” 등의 거친 반응을 보였고, 오늘 아침엔 그렇게 말한 남학생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서로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난 이 일과 관련해 당사자라면 당사 자고 또 아니라면 아니다. 내가 그들과 직접적으로 싸운 것은 아니나, 결론적 으로 난 그들의 생각, 언행에 상처받았다.

그동안 살면서 내가 당연시 여겼던 인권은 무엇인지 애초에 존재하기는 했었던 건지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나자 깨닫게 되었다.

당장 여성의 인권을 평등하게 돌려놓고 그들의 생각을 바로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 의’ 인권에 무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 다. 분명 평등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왔 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이 사회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천천히 차분히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다시 기억을 재생시켰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혐오 받았던 순간을. 몰카 사건이 크게 터지고 난 후 광주 버스 터미널 화장실에 뚫려있는 구멍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학교 여자 교복 블라우스에 잡혀있는 라인은 불편함을 배가시켰다. 어렸을 적 그토록 싫어했던 치마와 구두를 강요받은 것도 더욱 불쾌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내 몸이 부끄러워졌고 가리려 애썼다. 엄마는 이런날 두고 잠시 볼 일을 보려 가시다가도 되돌아오셔서는 “안되겠다. 너 가시내라 안 돼!” 라고 말씀하시며 항상 날 데리고 다니셨다.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서야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내가 왜 불안해해야 하고 왜 내가 걱정해야 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스러움을 강요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잘못한 건 남자들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이 사회이고 난 단지 여자로 태어난 것뿐인데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른 여성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SNS를 들여다보며 시위에 참여한 분들, 피해 자, 이에 대해 분노하여 그 분들이 쓴글들을 살펴보았다. 의견들이 다양했고, 더 옳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도 이어지고 있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 남자들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자는 사람들(흔히 ‘미러링’ 이라 한다.) 그 속에서 내 생각을 펼치 기엔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주제였다.

목적은 똑같은 평등인데, 싸움에 싸움이 꼬리를 물어 서로를 혐오하며 배척하고 대립하기도 하였다.

다시금 혼란스러워진 나는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어디서’를 묻기엔그 뿌리가 너무나 깊었고, ‘어떻게’를 묻기에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참을 자리에 앉아 멍 때리다 앞을 바라보니 친구들은 아직도 그 일로 떠들썩했다. 하나같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하고선 하나의 의견으로 동일한 마음이 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쭉 이 일은 논란거리로 남을 것이 고, 다시 싸울 것이고 상처받을 것임이 분명했다.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임을 알았다. 그 긴 시간 고민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이런 일들을 변화시켜야 할지, 그것이 내가 할 수있는 일 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사회가 달라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밤에 여자가 돌아다니는 게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아니기를! 화장실에서 볼 일 보기전 온갖 벽을 살피며 불안해하는 일이 없기를!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여성들이 눈물 흘리지 않기를 원한다. 멀고도 험한 길이겠지만 여성들이 함께할 것이다. 여자를 지키는 건 남자가 아니라 같은 여자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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