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갯내음이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둑방길을 걸어갑니다. 이곳은 진안 데미샘에서 생명을 얻은 섬진강이 500리 길을 달려와 남해바 다와 몸을 섞는 곳인데요.

지금은 제방 정비사업이 잘 이루어져 둑방길을 걷는 재미가 솔솔한 돈탁마을입니다. 둑방길을 따라 걷다보면 진한 솔향이 갯내음과 섞여 불어옵니다.

오래 전부터 갯가에 살던 사람들은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마을의 고요를 지키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해 왔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일텐데요.

돈탁마을도 마찬가지여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소나무를 심어 마을을 지켰습니다. 이 돈탁마을 송림 길을 걷다보면 머리 위로는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고 갯가로 눈을 돌리면 잔물결 위로 햇살을 퉁겨내는 물결이 그지 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부셔집니다.

▲ 963년 진월면 돈탁마을 송림

진한 솔향을 맡고 있노라면 상쾌하기도 하거니와 부유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마치 선정에 드는 느낌을 받게 되곤하는데요.

요즘으로 치면 아로마 테라피로 대표 되는 향기치유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월면 돈탁마을 숲은 중종23년 (1528년)박세후 현감이 광양에 부임해각 마을을 순방하다가 돈탁마을에 이르러 마을 초입에 우거진 송림을 보고 기특히 여겼습니다.

그는 돈탁 숲을 보고 산좌수려함에 매료돼 광양 8경의 하나로 지정하겠다고 했으니 당시 그 아름 다움에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과거에는 수백 그루가 둑방길을 가득채워 숲을 이루었다고 전해오는데요, 지금은 80여주가 마을을 초승달 모양으로 감싸며 사시사철 푸른 향기를 뿜어 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60년대만 해도 송림이 이렇듯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지금과는 사뭇 차이가 있습니다.

이 돈탁마을 송림은 2007년 (사)생 명의 숲 국민운동과 산림청, 유한킴벌 리가 주최한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 어울림상을 수상해 그 자태를 전국적으로 알리기도 했는데요.

마을과 함께 숲이 조성돼 있어서 주민들이 방풍, 휴양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다는 것이 수상의 배경이었습니다.

또한 돈탁 숲은 주민들의 관리 등 애착이 남달랐고, 숲 속에는 작은 정자가, 숲 입구에는 주민들이 자력으로 만든큰 정자가 있어서 주민들의 이용도가 매우 높다는 점도 수상의 이유였지요.

현재 수목의 상태도 건강해 머물다간 이름들이 세상과 결별한 이후에도 솔 숲은 오래도록 남아 이곳을 다녀가는 새로운 이름에게도 그윽한 솔향을 전해줄것 같습니다.

돈탁마을을 바투 지나치면 마을 뒤편엔 다수의 패총과 빗살무늬 토기편 등이 발견된 신석기 유적지가 있어서더욱 관심을 끄는데요.

산을 이고 물을 품은 돈탁마을은 초기 인류에게도 안성맞춤의 생활지였던 게 아닌가 싶습 니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명을 한 시기입니다. 바로 토기의 발명입니다.

토기의 발명은 인간 최초의 발명으로 솔향 가득 묻어나는 돈탁마을이 그런 곳입니 다. 패총은 널려있고 빗살무늬 토기편, 동물뼈, 패각 등이 수습된 곳입니다.

돈탁마을을 얘기할 때 ‘거북등’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거북등은 ‘거북이가 강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명명된 이름으로 현대에 들어서는 ‘거북 동산’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 거북 등은 배가 불룩한 것처럼 둔덕을 이루고 있어 ‘돕데기’라 연유, 지금의 돈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돕데기’는 발음상 부르기 쉽게 연음화 되면서 ‘돈테기’로 불렸고 또다시 한문으로 표기되면서 전탁(錢卓)-돈 탁(敦卓)으로 이어졌다는 게 지금의 정설입니다. 그

러나 돈탁마을의 원래 이름은 ‘돌튀미’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을에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황량한 곳으로 ‘돌터미’, ‘돔태기’, ‘돔택이’로 불리다가 한문표기를 하면서 ‘도타울 돈(敦)’, ‘높을 탁(卓)’ 으로 불리게 됐다고 말입니다.

오늘의 사진이었습니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