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1970년 무접섬 개바위>

“모모년 모월 열나흘에 진월면 선소리 망덕포에 모여 삼가 절하며 아뢰나이다. 용왕님의 신령을 애오라지 영접하오니 항상 수복水福의 길을 열어 주시옵고 운수대통하게 하옵시며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고기잡이 나서는 길에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하게 하옵시고 돌아오는 선단마 다 용왕님의 은덕으로 풍어를 이루도록 하옵소서. 삼가 술과 과일을 갖추고 공경 하고 높이어 미미한 정성을 바치오니 흠향하소서”

흔히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어선들은 첫 해 출항 전 용왕제를 올리는데요, 해신제라고도 하고 풍어제라고도 불리는 제사입니다.

바다를 관장하는 신인 용왕에게 제를 올리며 풍어를 비는 의식이지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았던 갯가 사람들에게는 이 용왕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선 위험한 바닷길에 생명을 지켜주고 풍어를 가져다주는 절대신과 같았기 때문에 용왕제는 어느 종교의 예배의식과 같이 엄숙한 일이었습니다.

용왕제의 연원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바다를 끼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선 용왕제를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지요.

용왕제는 주로 포구에서 제의됐지만 당산나무를 끼고 있는 마을에선 당산제를 올리면서 용왕제를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무사귀환과 풍어를 비는 용왕제에 바닷길에 나서는 남편을 위한 아낙들의 정성이 한 광주리 가득 담겨져 있을 터입니다.

용왕제에는 용왕 뿐 아니라 배의 수호 신인 배선왕에 대한 제사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수호신을 위해 돼지머리, 사과, 배, 굴비 일체를 차려 놓 고 선주가 제주를 맡아 제사를 지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안녕을 빌었지요.
물론 제를 올리는 동안 배에 꽂은 오색 깃대가 바람에 힘차게 나부낍니다.

오늘의 사진 속 주인공은 진월면 선소리 무접섬에 자리 잡은 뒤 숱한 시간을 흘려보냈던 개바위란 녀석입니다.

이 개바위를 둘어싼 청춘남녀의 모습이 어여쁘기도 한데요, 남해바다를 등지고 아직 세월 의 흔적들이 얼굴에 달라붙지 않은 참 고운 모습들입니다.

용왕제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더니 무슨 무접섬 개바위 이야기를 꺼내는지 다소 생뚱맞기도 할 일인데요, 짐작은 하셨겠지만 이곳 개바위는 청춘들의 놀이터이기에 앞서 전어잡이배의 풍어를 비는 용왕제가 열리던 곳입니다.

전어잡이배가 포구를 가득 메웠던 망덕포구 역시 바다에 나서기 전에 반드시 용왕제를 올렸던 것 입니다.

예부터 전어는 남해인근에서 많이 분포 했지요.
그중에서도 망덕전어는 전국 제 일을 자랑했습니다.
전어 수확량도 그랬거니와 맛도 또한 전국 어떤 곳에 비해 뛰어났습니다.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 일대가 전어에게는 가장 좋은 서식지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집 나갔던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왔 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겠습니까.

망덕포구의 용왕제는 바로 이 전어잡이 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에 행해 졌습니다.

전어는 일반적으로 6월~9월까 지는 바다에 서식하다가 가을로 걸어 들어가는 10월이 되면 연안의 바다가로 되돌아옵니다.

이때를 맞춰서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올렸던 건데요, 망덕전어가 전국 최고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용왕제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어집니다.

이 무접섬 개바위는 현재 해안도로 건설로 자취를 감추었지요.
광양제철소 건설로 망덕 전어 역시 그 명성을 잃은 것과 오버랩 되면서 참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요를 따라 선택한 일이지만 옛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 우리 곁에 머물지 않게 됐을 때 문득 찾아오는 서운함도 만만찮은 무게로 다가 오는 날입니다.

서운함 보다는 그리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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