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콧방귀깨나 뀌던 사람들이 모입니다. 흰색 두루마기에 의관을 정제하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면서 말이지요. 하얀 수염에 위엄이 잔뜩 배여 묻어납니다. 때 아닌 양반님네들의 출현에 동네어귀를 쓸던 상놈들은 선뜩 길을 비키는데 예전처럼 허리를 조아려 굽실대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개화된 지가 언제데 아직도 양반타령이냐”는 듯 검은 얼굴에 잠시 비아냥이 서립니다. 어째 왜놈들 쳐다보는 눈빛보다 곱지를 못할 양입니다. 왜놈들이야 남의 집 마당에 들어와 배운데 없는 후레자식 놈처럼 제집인 양 휘휘 저으며 유세를 떠는 꼴이 같잖아서 그렇지, 따로 강상의 차별을 두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더러는 말을 타고 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저 말이 이끄는 데로 몸을 맡긴 듯 아주 천천히 말입니다. 대체로 지체가 높아 아직까지 종복을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말머리를 잡은 종복의 모습이 차마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주인의 위세가 제 것인 양 당당한 품새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나 위세가 하늘을 찌를지라도 하마비 앞에 이르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마비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를 뜻하는 말로 지위가 높던 낮던 상관없이 이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명령어입니다.

이 하마비는 궁이나 종묘, 문묘 앞에 세워져 있으니 아무리 그 지위가 높다하더라도 왕가나 성리학의 큰 스승인 공자를 넘어설 수 없었던 게지요. 제법 지위가 있다 한들 공자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대성전이 들어선 곳을 지나는데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없을 밖에요.

삼삼오오 모여들다 보니 어느 사이 수백 명이 마당을 채웁니다. 이미 얼굴을 아는 처지라 수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시끌벅적 합니다. 올 사람은 다 온 모양입니다. 이윽고 여악이 울려 퍼집니다. 오늘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음식들이 차려져 나오고 하얀 수염이 근엄하게 빛나는 나이 지긋한 양반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나이 많은 양반네들이 주인공이었던 겁니다. 바로 기로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기로연은 매년 음력 3월 3월 3일이나 중양이라 불리는 9월 9일에 열립니다. 학문과 덕행이 높은 양반네들의 삶을 위로하는 것으로, 이를 테면 위로행사와 같습니다. 기로연은 1394년 한양천도 후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60세에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늙은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래 기로연은 정2품 이상 재직했던 지낸 70세 이상의 문과 출신 관원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기로연을 행하던 기로연은 임금이 원로대신을 위하는 잔치로 군신간 의를 다지고 경로사상을 고취시킨다는 유학의 사상을 대표하는 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

잔치에 참가한 문신들은 먼저 편을 갈라 투호놀이를 한 뒤 패한 편에서 술잔을 들어 이긴 편에 주면 승리한 편에서는 읍하고 서서 술을 마시는데 이 때 풍악을 울려 술을 권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잔치를 열어 크게 풍악을 울리고 잔을 권하여 모두 취한 뒤에 파하였고 날이 저물어야 서로 부축하고 나왔다지요. 근래에 들어서는 연세가 많아 장수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1940년대 광양향교의 기로연 모습입니다, 당시만 해도 저렇게 많은 유림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로와 효로 상징되는 유학의 문화가 아직 사회전반을 이끄는 때였음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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