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씨 “소중한 광양불고기, 그 맥을 이어갈 것”

광양불고기의 시초이자 원조로 꼽히는 광양삼대불고기가 4대(代) 시대를 맞고 있어 관심이다. 1930년 고 이소은 여사가 문을 연 뒤 88년을 맞는 올해 2대 고 이영조 씨, 3대 이형중 대표에 이어 그의 아들 이영재(26)씨가 삼대불고기의 맥을 전수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 1대 故 이소은 여사

광양삼대불고기를 찾아 갔을 때 마침 영재 씨는 주방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차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임에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또래들과는 달리 가업을 잇겠다며 힘든 주방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아버지 이형중 대표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 이형중 대표는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결정하고 주방 일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기 그지없다”며 “일본의 경우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게 보편화된 상황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아쉬운 마당에 아들이 먼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서 주니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재 씨가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을 품은 건 꽤 오래전이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가업을 이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큰 아들인 나도 언젠가 아버지처럼 광양불고기의 맥을 지키고 있겠구나” 했던 것이다.

▲ 2대 故 이영조 씨

그 같은 느낌은 고교를 진학하자 좀 더 명확하게 다가왔다. 대학진학이 다가오자 아예 식품조리학과에 입학을 결정했다. 아버지 이형중 대표도 말리지 않았다. 영재 씨는 호남대학교 식품조리학과에 진학해 조리학과 요리실습을 겸하면서 요리의 기초를 익혔다. 그리고 이제 그는 천하일미라는 광양불고기 원조의 역사적 무게를 기꺼이 감당코자 하고 있다.

광양불고기의 탄생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멀리 일제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한참 세월을 거슬러야 한다. 광양으로 귀양을 온 선비와 그 보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우리지역 작가 주동후가 쓴 <광양이야기>에 따르면 광양불고기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던 한 선비가 곡절 끝에 광양으로 귀향을 왔고 유배지에서 적조의 한 때를 보내던 이 선비가 성 밖에 남문 밖 백정들의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쳤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부모인 백정들은 그 은혜가 하도 높고 깊음에 감사해 갓 잡은 암소를 저며 양념을 재우고 백운산 참숯에다 구리석쇠를 얹고 고기를 구워 대접했는데 훗날 임금의 은혜를 받아 조정에 다시 출사한 이 선비가 그 맛을 그리워하여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이라 일컬었다는 게 광양불고기의 유래다.

하지만 이 같은 광양불고기의 유래를 여기서 찾는 건 온당치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예로부터 백운산 참숯은 그 유명함이 높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불고기 음식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구려 이전부터 맥적이라 불리는 불고기가 있었다는 게 여러 문헌에 나와 있는 것으로 미뤄 이미 그 전부터 참숯으로 구워내는 형태의 음식이 있었으리라는 추론은 타당함이 없지 않다.

다만 현재 광양불고기라는 이름으로 밥상머리에 오르는 음식의 원조는 1930년 문을 연 <일흥식당>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당시 일흥식당은 현재 매일시장(옛 광양5일장)부근에서 문을 열고 현재 광양불고기 방식과 비슷하게 얇게 저민 소고기를 각종 양념에 재워 숙성시킨 뒤 손님상에 내놓았다. 이 일흥식당의 주인이 바로 고 이소은(~1973년)여사다.

역시 주동후의 광양이야기에 따르면 이소은 여사의 뒤를 이어 1968년 아들 고 이영조(1931년~1979년)씨가 현 경도식당 옆으로 자리를 옮겨 현 어머니의 불고기 메뉴를 광양불고기라고 이름 짓고 광양불고기식당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광양불고기는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2대 이용조 씨가 일찍 작고를 했지만 광양불고기식당은 3대 형중씨가 이어받아 현재 서천변 광양불고기특화거리에서 광양삼대불고기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88년이라는 유서 깊은 가풍의 맛을 4대 영재 씨가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 3대 이형중(우) 대표와 그의 아들 이영재 씨

영재 씨는 “가업을 잇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이는 반드시)자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에 더해 광양불고기의 원조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것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지만 그만큼 부담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며 “주방에서 삼대광양불고기 맛을 이어받기 위한 시간들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영재 씨는 “광양불고기의 맛을 지키는 게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지만 광양불고기 그중에서도 삼대만의 맛을 배워가고 있는 지금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다”며 “원조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배워서 선대의 역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형중 대표는 “규모를 키우기 보다는 아들이 삼대불고기의 맛을 먼저 생각하고 배워서 자기의 것을 잘 지켜갔으면 하는 게 아버지로서의 꿈”이라고 하자 영재 씨는 “아버지가 고집이 세신데 달리 말하면 자기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으로 그게 오늘의 삼대불고기를 만든 힘일 것”이라며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아버지를 본받아 삼대 불고기의 역사를 올곧게 이어 가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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