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어느 가을 날, 자식들 정성으로 올린 수연회

 

요즘 세상엔 백수를 누리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만 예전에야 어디 사람 수명이 오늘과 같았을까요.

지금은 한 갑자를 돌고 나서도 여전히 청년 대접을 받는 세상이지만 예전에 한갑자를 살면 한 생명이 참 오래도록 장수 하였다 하여 일생의 가장 큰 잔치인 회갑 연을 베풀곤 했습니다.

온 동네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어서 일가는 물론 이웃에 이르기까지 그날을 기억해 내방을 하곤 했지요.

부모의 회갑을 맞은 자식들은 정성스럽게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마을사람에게 크게 베풀어 그날까지 무병장수한 부모의 앞날을 기원하고 이웃에게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살림살이가 나으면 나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제 형편껏 준비한 자식들의 정성에 다들 감복하였으니 회갑연이 있던 날은 그야말로 동네잔치가 따로 없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마을 사람들이 축복 속에 치러지던 회갑연은 초상집 다음으로 풍성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요.

곡하는 자식들을 옆에 두고 애써 큰 소리를 내지 않았던 초상과는 달리 회갑연은 음주가무가 어우러져 한바탕 난장이 벌어졌으니 어린 마음에도 “참 좋은 날이구나” 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역설적이게도 그 시절엔그 만큼 젊어 세상을 등진 이들이 참 많았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역

병에 죽고 전쟁통에 죽고 굶어서도 죽을 수 있었던 모진 세월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문 탓 이겠지요.

하여 사람이 한 갑자를 이루기 직전 60 세 때의 생신을 육순이라 칭하여 육십갑 자(干支六甲)를 모두 누리는 마지막 나이를 축복했고 육십갑자를 다 보내고 다시 낳은 해가 돌아온 61세 때 회갑연을 열었습니다.

62세는 진갑이라 일컬었는데요, 다시 60갑자를 산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하게 한 갑자를 돌아온 이들의 생신을 극진히 섬겼지요.
66세를 은퇴하는 나이이나 아직 여력이 남아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나이라 하여 미수라 불러 기념했고 70세의 생신을 희수 혹은 칠순이라 하여 또 챙겨 올리는 게 당연시 여겨졌습니다.

희수는 사람이 70세까지 살기 어렵다는 뜻을 지닌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됐는데 70세를 넘겼으니 참으로 장수 했음을 부러워 한 말이었습니다.

더나가 77세 때의 생신을 희수喜壽, 80 세를 팔순, 88세를 살아 생신을 맞으면 미수米壽, 90세의 생신을 졸수卒壽라 했습니다.

이 졸수라는 말은 ‘이제 세상을 그만 살아 달라’라는 뜻을 지녔으니 자식으로 서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었으니 모두들 졸수 보다는 구순이라 불렀다고 전해 옵니다.

99세 때의 생신을 백수白壽라고 하여 기념하였으니 이는 白자가 일백 백百자 에서 ‘一’를 뺀 글자이기 때문이었지요.

보통 장수를 뜻하는 기준이 되는 회갑 연이 지낸 웃어른의 생신에 자식들이 술을 올리며 장수를 비는 의식 모두를 수연 회라 불렀는데 지금보고 계시는 사진처럼 북쪽에 병풍을 치고 병풍의 중앙 남쪽의 동쪽에 남자 어른, 서쪽에 여자 어른의 좌석을 마련했답니다.

어른 앞 남쪽에 큰상을 차리고 큰상의 남쪽 중앙에 술상을 놓고 술상의 동쪽에 어린 남자, 서쪽에 어린 여자가 서도록 했습니다.

술상의 남쪽에 절하는 자리를 깔고 자리의 동쪽에 남자 자손, 서쪽에 여자 자손이 자리를 잡았지요. 또 큰상의 서쪽에 집례(사회)가 자리 잡았고 자손들의 남쪽에 동쪽은 남자 손님, 서쪽은 여자 손님의 상을 차려 냈습니다.

만약 수연을 맞는 어른보다 더 웃어른이 계시면 큰상의 동쪽에 서쪽을 바로보고 따로 상을 차려 남자 웃어른이 서쪽에 동향해서 따로 상을 차려 여자웃어른이 자리를 잡아 아랫사람의 장수를 함께 축복했습니다.

사진 속에 나란히 앉은 어르신들의 표정이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는 표정입 니다. 단기 4291년 10월이니 서기로는 1958년에 수연회를 가진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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