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걸으며

▲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가지 않는 길 (로버트 프러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 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 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중 략-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나는 아버지가 노를 젓는 뗏목에 꼿꼿하게 선채로 점차 멀어져가는 육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평선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뗏목에 저항하듯 부딪는 물결은 간헐적인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다시 다가섬을 반복하곤 했다.

노를 저어 나갈 수록 바다에는 갈 길을 흔드는 강한 바람이 일었고 우리는 그 때마다 힘없이 흔들렸다.

수시로 방향을 바꿔가며 출렁이는 물이 뗏목 사이로 스며 들어와 나의 맨발을 적셨다. 망망대 해 검푸른 물 위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서 있다는 사실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뒤에서 힘겹게 노를 젓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거친 바람을 안고 항해하는 것처럼 힘겹고 아슬아슬한 일처럼 보였다.

배가 멀리 나아갈수록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바위들과 포구를 둘러싼 산들은 꿈속에 잠기듯 점차 아득해지고 있었다. 서로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은 점차 작아지고 점이 되고 흐릿해지며 결국 공허함만 남을 것이다.

내게서 고향의 바다와 포구와 작은 산들이 지워지면 무엇이 남을까? 작은 골목길과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던 돌무덕, 어디서든 함께해서 나를 힘차게 했던 친구들,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나누 었던 이야기들을 어디에서 다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당장 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잊고 새로워지고 싶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에서 벗어나고도 싶었다. 바다 보다는 넓은 평원에 물 흐르듯 기차가 지나가고 번듯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넓은 도시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물결이 잔잔한 어느 맑은 날이면 투명한 물속에 놀던 지난날의 푸른 기억들로 기득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바다를 떠나서는 도저히 살수 없을 것 같았다.

고향이라는 온기는 내가 어디에 있든 결코 식지 않았고 한편으론 내가 곁에서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로막곤 했다.

고향 때문에 나는 외로 웠지만 고향이 있음으로 인해 내내 위로 받으며 살아가곤 했다. 아버지는 매일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문어를 잡아오셨다.

변변치 않은 수입이었지만 그것은 우리 가족의 중요한 생계의 끈이었다. 가볍게 출렁거리는 물결의 높이와 거의 맞닿을 정도의 오동나무 10여 개를 눕히고 이어 만든 뗏목은 바람이 불면 물결을 따라 함께 춤을 추었다.

뗏목은 쉽게 물결에 휩쓸리며 순식간에 먼 바다로 떠내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있는 힘껏 노를 저어 가까스로 포구로 돌아오곤 했다.

휴우! 아버지의 힘겨워 하는 표정과 어머니의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우리는 또얼마나 우울해야 했던지.

나는 어릴적의 소망대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50 대 초반까지 대도시에 살았다.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왔지만 고향에 심어진 마음 속의 큰 뿌리는 모두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살아야할 곳은 결국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그간 내가 도시에 살면서 얻은 소득 이었다.

누군가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했듯 인간은 자연을 도시로 바꾸 느라 신의 뜻을 거역했고 결국 본래의 고향을 잃어버린 셈이다.

자연의 품속에 살던 내가 어느 날문득 도시 속에서 느끼던 단절감과 고립감은 수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극복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도 늘 자연과 가까운 지점 에서 맴돌았고 어쩌다 온전히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면 가슴이 뛰었고 그간 움츠렸던 마음이 열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찾아가듯 내 생활의 터전을 자연스럽게 산 속으로 옮겼다.

비록 도시에 비해 생활은 불편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곳, 내겐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불편함 마저도 황송한 곳이 자연이었다. 나는 시골로 터전을 옮겨 생활하면서 문득 문득 진즉 농부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후회를 하곤했다.

정성으로 대하고 몸을 움직이면 선물처럼 쏟아 지고 생겨나는 것들 , 땀과 그 열매와 후련함까지도.

사람들은 문명에서 편리함을 추구하고 자연에서 평안을 구한다. 아무리 세상이 앞으로 더 나아 가고 원하는 많은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편리함이 마음의 평안함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깊은 산 속에서 살아가는 곳도 결국은 내가 어릴적부터 품고 있던 바다라는 자연을 다시 찾은 셈이다.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더 이상 갈래길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지금껏 내가 키운 나무들이 나보다 높은 곳에서 자유롭게 넘실거릴 때마다 흐뭇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예전에 내가 가지 못했던, 그래서 항상 그리움 속에 머물러있던 이 길을 다시 찾은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것인지.

이제서야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는 마음을 노래한 도연명의 歸去來辭를 이해 할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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