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업체 측이 주장하는 마을개발사업 몰랐다”

한숨부터 나왔다.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입 밖으로 뱉어져 나온 건 하얀 담배연기가 아닌 속울음 같은 한숨이었다.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수심이 가득했다. 한 어르신은 “평생 땅과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촌 노인네가 무엇을 알겠냐. 그저 동네를 발전시키고 잘 살게 해준다니, 덥석 사람을 믿은 게 잘못”이라는 자책했다.

광양읍 초남마을, 공단과 철길에 가로막힌 마을앞 풍경처럼 주민들의 마음 답답하다. 최근 살고 있는 집 등 부동산을 압류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약 60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같은 처지다.

마을개발을 진행했던 한 업체가 운영비 등 그간 마을개발사업에 들어간 비용 30억 원을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며 마을 전체 주민들을 상대로 부동산 압류예정 통보를 한 것이다. 업체 측의 주장대로라면 가구마다 4600만 원이 넘는 돈을 부담해야할 처지다.

업체는 내용증명을 통해 “당시 초남마을 대표인 A 씨가 주민전체 동의를 받아 마을개발사업을 추진코자 했으나 최근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업체 변경 등을 추진해 마을개발사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됐다”며 “그동안 사업진행을 위해 투자된 금액과 운영비 등 총 30억 원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 업체 측의 주장에 따르면 마을개발사업과 관련해 이에 동의한 초남마을 전체 주민의 인감증명서와 인감날인이 된 동의서를 마을대표 A 씨로부터 넘겨받아 사업을 개시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초남마을 주민들은 업체 측이 주장하는 마을개발사업 자체가 진행되는 줄 몰랐다고 했다. 업체 이름도 이번 예고통보를 받고서야 알았다는 입장이다. 마을개발사업에 동의한다는 인감날인이나 인감증명서 역시 제출한 바 없다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한 마을주민은 “마을과 관련된 모든 것은 마을총회를 통해 결정되는데 지금까지 마을개발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업체도 본 적이 없다”며 “누군가 마을주민들의 인감증명서와 인감을 도용해 문서를 위조한 뒤 마을주민도 모르게 해당업체와 마을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계획이 틀어져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민도 업체 측이 밝힌 대로 “전 마을대표 A씨가 일을 꾸민 것”이라며 “마을 앞 공유수면매립 당시 주민들에게서 받은 인감증명서 등을 복사해 두었다가 이번 일을 저지른 뒤 마을주민에게 이 같은 피해를 전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 마을 손재기 이장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청원 글을 게시해 마을피해구제와 책임자 처벌 등을 하소연하고 나섰다.

손 이장은 이날 국민청원을 통해 공유수면매립조합장 A씨가 “주민들의 도장과 인감증명서를 동의 없이 복사해 천문학적인 돈을 횡령했다”며 “그로 인해 우리 마을 전체주민 가구마다 부동산에 가압류가 들어오게 됐다”고 밝혔다.

손재기 이장은 “평균 나이 80세에 달하고 혼자 사는 분이 절반이 넘는데 A씨가 마을 주민전체를 이주한다는 명분아래 아무도 몰래 시행사를 선정해 3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용역비용으로 받아썼다”며 “평생 일만하다 이제 나이 먹고 하루하루 그저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속에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이장은 “같이 살자고 했던 일이 한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힘없는 노인들이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만든 그의 행위가 더 이상 용서가 안 된다”며 “A씨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손 이장의 이 같은 국민청원에는 현재까지 1028명이 답한 상태다. 오는 22일로 청원기간이 끝나 청와대의 답변을 받아내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 마을대표 A씨는 이번 마을개발사업 이외에도 공유수면매립을 둘러싼 횡령의혹과 산단 진입도로 보상금 문제 등을 두고 주민과 갈등을 빚었다. 그 일로 결국 고소고발이 진행돼 법정다툼을 벌였으나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초남마을 주민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또다시 A씨를 고발조치할 예정이어서 주민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전 마을대표 A씨는 한 지역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지 보상금이 나오기 전까지 3∼4년간 업무를 보면서 개인 돈으로 은행 이자 등 각종 비용을 모두 지출했다”며 “주민들이 모두 결산서에 도장을 찍어 놓고 보상금이 나오니까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4번 고소고발을 당했는데 법원에서 2번 모두 무혐의로 기각되고 경찰 조사도 모두 마무리 됐다”면서 “무고로 걸 수도 있지만 부모 같은 마을 주민들이어서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