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석 (광양항 화물노동자)

▲ 서광석 (광양항 화물노동자)

지난 9월11일 광양항화물 노동자들은 항만공사 앞에 모여 상하차지연 대책과 광양항 기능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개최하고 부두내 도로에서 화물차행진을 진행했다. 이런 규모 집회와 화물차 행진시위는 광양항 부두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화물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상하차실적 인센티브제도’를 시범실시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범실시 결과를 보면서 차후 판단하겠다는 것일 뿐, 전면실시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상태다.

여러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이를 보도하였고, 이후 심층보도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언론이나 시민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화물차 기사들이 장시간 대기하는 문제로 이해하는 것 같다. 화물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광양항의 정상적인 기능이 하락하고 저품질 항만의 악순환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위기를 지적한 것이었다.

악명을 떨치는 ‘화물차 상하차지연’은 그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화물노동자들이 데모한다고 하니 본말을 전도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광양항 출입 화물노동자 입장에서 상하차지연보다 더 심각한 근본문제는 사실 광양항의 위기상황이다.

광양항의 기본기능 저하-위기의 주요인

컨테이너 터미널은 주변의 배후단지와 주변도시뿐 아니라 보다 영호남 남부권 경제에 커다란 파급력을 미치는 인프라이다. 컨테이너 터미널은 수출입기능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로 인한 2차적 경제파급력은 사실 굉장히 폭넓다. 영남권 경제가 부산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광양항 배후단지 개발은 여전히 수입물품 창고업체들과 광주, 여수화학단지 수출입 대기 화물창고 역할에 머물러 있다. 수입물품의 종류도 사료, 종이원료(폐지), 우드팰릿 정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배후단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입보다는 수출중심 공장, 화학, 전자, 기계 등의 산업업종이 들어오는 것이 좋다. 공정은 중간재, 기술은 중고위, 고위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좋다. 이들은 고용과 세금을 창출하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지자체에서나 항만공사에서 유치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인센티브, 조세혜택, 임대혜택 등 돈으로 유인하거나 읍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시장경제의 원리상 효과를 보기 어려웠고 성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인프라는 광양항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한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광양항의 정상기능은 매우 저하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비법과 화려한 인테리어를 가진 맛집이라 하더라도 화덕하나, 프라이팬 하나, 탁자 몇개, 요리사 한명으로 큰 성장을 하기는 어렵다. 광양항은 기본적으로 인력이 부족하고 부족한 인력에 맞추어 장비를 가동하며 ‘선적작업’과 ‘상하차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컨테이너화물선이 들어와서 정해진 시간 내에 ‘선적작업’을 마치지 못하면 배가 출항하지 못하고 터미널운영사는 그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사에 물어줘야 한다. 당장 다급한 ‘선적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상하차작업’은 뒤로 밀리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사실 ‘선적작업’조차도 원활하지 못하다.

애초에 여수수산해양청과 항만공사가 유도하고 그에 따른 터미널 간 물동량 유치경쟁이 출혈경쟁으로 번진 결과 광양항 하역료와 보관료는 부산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번 떨어진 작업비는 올리기 쉽지 않다.

광양항에서는 ‘해운선사’가 갑이요, ‘항만공사’는 을이요, ‘터미널’은 병, ‘장비기사’는 정, ‘화물노동자’는 뭣(?)이라는 말이 있다. 항만공사와 터미널이 물동량에 목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해운선사’들은 물량을 지렛대로 극한의 수준까지 값싼 작업료를 요구해 왔고 더 이상은 떨어질 기력조차 없게 되었다. 터미널은 거의 제로수익의 수준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재벌그룹인 CJ에서 2년 전 인수한 대한통운은 결국 장금상선에 반 억지로 떠넘겨졌다. 한진해운 부도사태로 장비기사 정리해고로 반토막난 터미널을 넘겨받은 SM은 휘청거리고 있다. 항만공사 관계자들의 입에서 통합만이 대안이라는 파괴적인 발언이 나오고 있다. 애초 컨테이너부두로 개발된 광양항은 절반 이상이 유휴지나 다름없이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정부의 투 포트 정책 폐기 때문이라는 탓만을 되풀이하며, 항만공사나 터미널의 자구노력은 물동량 유치만이 유일했을 뿐 터미널의 본래 기능을 잘 살려서 성공해 보려는 노력은 전무했다.

기본기능 회복으로 선장들을 만족시켜라!

‘해운선사’들이 광양항에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선적화물을 빠르고 안전하게 싣고 내려주는 것이다. 가격과 온라인정보제공, 인센티브, 조세, 검역편의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선적작업’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 걸리기도 하는데, 그동안 선원들은 배에 항시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 20시간 예정되었던 작업이 10시간으로 단축되어 끝난다면 10시간은 선원들에게 여유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시간이 단축되면 육지에 내려와 선상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구입하고 개인쇼핑도 할 수 있으며, 선박내의 간단한 정비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다음 노선지를 향해 빨리 출발하면 선장도 다음 항로의 여유와 시간활용, 기상현상에 대비 등을 계획할 수 있다.

‘해운선사’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사람들은 선장들이다. 선장들에게 평판이 좋고, 우선 선호되는 터미널은 노선이 늘어나고 물량은 따라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항만공사와 그 용역을 받은 전문가, 학자들은 터미널의 근본기능인 ‘하역작업 능력’은 기본으로 충족되었다고 치부하고 그 외의 부수적인 요인들-비용, 물류네트워크, 온라인서비스, 인센티브, 조세혜택, 기타 부수서비스 등 소프트웨어적인 요소에 집중해 대안을 제시해 왔다. 선사와 선사대리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단가를 무수익 수준으로 하락시켜 유치하려는 노력이 출혈경쟁으로까지 이어지며 그것이 오늘날 광양항의 모습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를 놓친 것이다. 바로 광양항의 골간핵심인 장비인력과 장비가동, 장비의 부족이다. 그 중에서도 야드크레인 장비가동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터미널 하드웨어 관련 지적은 기껏해야 세계최대의 선박도 들어오게 하려면 28열 선적용크레인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였다.)

이 면에서 가장 대표사례로 일컬어지곤 하는 부산신항은 모든 야드에 블록당 한 대씩 크레인이 배치되어 있으며, 최신형 장비에 여러 자동화 센서들이 부착되어 있고, 원격으로 조종한다.

광양항에서는 그만한 투자를 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놀고 있는 장비를 활용하며, 장비 대수를 늘리고 가동 인원을 대폭 늘려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광양항 터미널운영사들은 투자의지와 능력을 아예 상실한 상태이고 누군가는 이들을 정상화로 이끌어내고, 운영의지와 투자의사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간 항만공사에서는 이런 구체적인 조치와 노력 없이 그저 정례적인 회의 때 “투자하고 장비 늘리고 상하차 해결하시오”라는 말만 하고 그쳤던 것이다. 광양항 화물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상하차실적인센티브제도’를 제안하자 항만공사는 허둥지둥 이를 수용하였지만 아직 시범실시 하겠다는 정도에 머물렀다.

의구심이 드는 시범실시. 전면실시 수용이 해답이다.

광양항은 골병 든 환자와 같은 상태이다. 먼저 기력을 회복하고 병의 근원을 제대로 진단하고 찾아 치유해야 한다. 이런 노력조차 없이 터미널 운영사들이 휘청거리니 통합만이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래된 동네 돌팔이가 메스를 들고 환자의 팔다리부터 자르겠다고 나서는 꼴이나 다름없다. 높은 건물 책상머리에 앉아 내려다보며 눈앞의 부실을 귀찮아하고 잘라버릴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려낼 수 있는지 현장에 나가 문제를 직접 보고 느끼며 폭넓게 소통하는 자세로 실사구시의 자세로 달려들어야 한다.

광양항을 되살리고 정상화하는 시작은 장비기사 확충, 완성은 장비도입에서 시작해야 한다.

항만공사는 시범실시를 해보고 전면실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화물연대에서는 이미 구체적이고 검증가능하며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대안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시범실시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화물노동자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범실시가 발등의 불만 끄고 피해나가려는 핑계와 꼼수가 아니길 바란다.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대륙철도의 꿈도 한걸음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평화번영의 시대가 현실이 된다면 광양항도 폭발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광양항 정상화는 평화번영 시대를 맞이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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