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광-숲길을 걸으며

▲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처음 내가 산촌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재 너머 초막징에 가면 반딧불이가 나온다며 감추어진 얘기를 털어놓듯 내게 말하곤 했다.

그 말은 나에게 가서보라는 뜻인지 아니면 그들 사는 동네가 그만큼 깨끗하고 쓸만한 곳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내게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분명했다.

반딧불이는 지난 날 내게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기억에서조차 지워진 존재였다.

애초부터 시골이 도시화되면 생태가 파괴되고 어쩌면 반딧불이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염려조차 느낄 겨를도 없이 도시에 살면서 까마득하게 잊혀진 것이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임에도 사라진 것조차 모르고 살다보니 귀하고 중요한 일에 대한 관심마저 무뎌진 것 같아 내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 느꼈던 감정이나 상상력은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반면 큰 걱정 없이 보낸 시절의 느낌들은 희미하게 지워져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은 결국 나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어주었고 그 때의 순간 순간은 소중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곤 한다.

그런 이치를 생각하다보면 어려움 모르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삶의 가치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살짝 걱정이 일기도 한다.

마을에 반딧불이가 나온다는 소식에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달려 가보고 싶었지만 여름이면 어김없이 계곡으로 밀려오는 인파와 생겨나는 일 때문에 계속 미루어지곤 했다.

그 와중에 아무도 살지 않는 봉강새재의 깜깜한 밤길을 간다는 것이 내겐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반딧불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릴적 이야기로 채워진 동심의 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그는 반짝이는 우리의 꿈이었고 여름 밤마다 만나는 단짝 같은 친구이기도 했다.

여름밤 어두운 골목길을 나서면 어디선가 짠 !하며 앞에 나타나 무작정 나를 끌고 다녔다.

그가 가는 곳을 무심코 따라가다가 작은 도랑에 빠지기도 하고 담벼락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가 안내하는 곳은 으레 마을의 넓은 모래펄이었다.

모래펄은 무더위를 피해 집을 나온 마을 사람들의 거대한 숙소이자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푹신한 안식처였다.

파도가 밀리는 긴 모래펄에 이웃끼리 또는 친구들 끼리 나란히 누워 곤히 잠드는 모습을 보면 격의 없는 평화와 경건함이 함께 어우러지곤 했다.

집집마다 호롱불은 꺼져있었기에 별과 반딧불이는 진한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한 빛을 내고 있었다.

먼저 나와 있던 친구들은 벌써 반딧불이와 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와 와 ! 종종 아이들의 흥겨워하는 함성이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잠재우고 있었다.

불꽃놀이 하듯 푸른 불빛이 수시로 하늘을 휘젓고 아이들은 그들을 잡기라도 하듯 달려가고 다시 돌아서곤 했다.

그러다가도 헤어질 시간이 오면 반딧불이는 분명한 선을 긋듯 어둠 속으로 멀어졌고 우리는 어둠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망연히 서 있곤 했다.

밤이 깊을수록 파도 밀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높은 하늘에는 별들이 잠든 사람들 위로 쏟아질 듯 반짝거렸다.

며칠 전 마을에 있는 천문대 주변에도 반딧불이가 나온다는 천문대장의 이야기에 용기를 내어 드디어 봉강 새재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밤이 오길 기다리며 걷는 시간은 정적을 깨는 계곡 물소리와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한양으로 가는 길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이젠 넓고 반듯한 길에 자리를 내주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 해마다 쌓이는 낙엽의 두께만 더하고 있었다.

매천 선생도 재 너머 구례에 계신 스승에게 배움을 청할 때 반딧불이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지 않았을까 ?

밤길을 걸으며 오로지 발품으로만 이동이 가능했던 시절, 이루고자하는 것들은 멀리 있었고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딧불이가 그들의 피곤한 행로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뚜렷했던 길과 나무들,하늘과 산능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어둠이 속속들이 채웠다.

흐르던 시간마저 멈춘 듯 주변은 적요했다.

산촌에 살면서도 참으로 오랜만에 빛이 사라진 완벽한 어둠 속에 들어와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낮설고 산짐승이 두렵기도 했지만 반딧불이를 만나려면 이 정도쯤의 불편은 감수해야한다는 생각에 바위에 정물처럼 앉아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아무런 기척도 없어 지루함이 느껴질 무렵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 푸른 빛 하나가 내려오는 듯 하더니 허공을 가로지르며 사라졌다.

반딧불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탄성이 일었다.

그리고 연이어 어두운 숲에서 빛이 일었고 다시 맞은 편에서 화답하듯 푸른 빛이 천천히 비행하고 있었다.

불빛을 안고 허공을 누비는 모습이 내가 보았던 바로 그 빛이었다.

반딧불이가 새롭게 나타날 때마다 내 눈은 빛나고 가슴은 콩닥콩닥 거렸다.

그러나 내 어릴적 내가 보았던 그 많았던 반딧불이는 이제 숫자가 많이 줄었다.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되어 높은 신분이 되었지만 그동안 세월에 떠밀리고 문명의 수난을 피해 이 깊은 계곡을 파고 들어와 피난살이하듯 연명해가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밝은 빛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반딧불이란 희미하고 미약한 존재에 불과 하지만 그가 내미는 빛은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꽃피울 수 있는 하나의 불씨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곁을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반딧불이를 이제는 무심코 바라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 자연이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가 우리 곁에 살게 된다면 우리의 삶도 건강하고 풍성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딧불이와 나는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친구처럼 지냈고 황폐해진 도시를 피해 깊은 산 속으로 스며든 것도 비슷하다.

이제부터 처지가 비슷한 우리들 끼리 알콩 달콩 잘 살아 볼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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