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실 없는 읍면동사무소…보육도시 역주행

생후 8개월 된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모유 수유 중인 아이 엄마인 김 모(31)씨는 당황했다. 사람들이 많은 관공서인 광양읍사무소 민원실에 우는 아이를 달랠 길은 하나뿐이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수유실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축기로 짜놓은 젖병을 냉장고에 두고 온 게 생각났지만 그림의 떡일 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급한 마음에 직원에게 “수유실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할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광양지역 대부분의 공공기관에 수유실 설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농협 등 금융기관이나 터미널, 전통시장 등 다중이용시설에도 수유실을 따로 마련하지 않은 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광양시가 전국 최초 보육재단 설립 등 아동친화도시를 표방했으나 정작 보육의 기본이 되는 수유시설조차 제대로 마련치 않고 있는 셈이어서 헛구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취재결과 광양시청을 제외하고 12개 읍면동사무소 중 수유실을 따로 두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특히 인구 5만 명에 육박하는 광양읍사무소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마동사무소 역시 수유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농업기술센터와 광양문화예술회관, 보건소, 실내체육관, 시립중앙도서관 등 지역내 대표적인 공공시설 역시 수유실을 갖추지 않았고 외부공공기관인 광양교육지원청과 우체국,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터미널의 경우 중마터미널은 수유실을 갖추었지만, 광양읍 터미널은 미설치 상태였고 중마터미널도 화장실 입구에 설치돼 이용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농협도 마찬가지다. 광양농협을 비롯한 5개 농협 역시 수유실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이 엄마 김 씨는 “광양지역에서 수유실을 갖춘 곳을 찾기란 참 어렵다. 읍면동 민원실 등 광양시 산하기관만이라도 시설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며 “더구나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내세운 도시라면 보육 관련 시설을 민간시설에까지 확대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쉬움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광양시에 따르면 현재 광양시가 파악한 수유실 운영시설은 광양시청 이외에 광양시보건소, 중마통합보건지소, 희망도서관, 건강보험공단, 광양역, 홈플러스, LF스퀘어, 섬진강(상하)휴게소 등 10곳. 그러나 휴게소라는 예외적인 섬진강휴게소 제외하면 사실상 8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미처 광양시가 통계에 넣지 못한 중마터미널을 합치더라도 9곳에 그친다.

여성계의 불만은 크다. 여성의원인 광양시의회 이형선 운영위원장은 “광양시 기관이나 시설을 살펴볼 때 산모와 아이를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양육과 보육도시를 표방한 광양시 그간의 행정이 무색할 지경”이라며 “가장 기본적인 시설이랄 수 있는 수유실 확보는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나가 “수유실은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와 산모의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안전한 위생관리 등이 필요하다”며 “광양시가 수유실 확대에 적극 나서되 수유실 수만 늘려나가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산모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들이 갖춰진 수유공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소파·테이블은 물론 기저귀 교환대, 냉난방기, 정수기, 수유쿠션 등 수유에 필요한 구조 및 시설물과 함께 실내온도와 환기상태 그리고 수유실 내 바닥 등 오염관리 등도 철저하게 유지 관리하는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춘규 보건소장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우리 지역 공공건물 등 수유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현황파악을 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한다”며 “무엇보다 이용층의 수요가 많고 다양한 광양읍사무소와 중마동사무소 등은 수유실 설치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더나가 유관기관이나 금융권 등은 물론 수요가 많은 민간시설에 대해서도 수유실 마련을 권고하고 이를 지원할 수 방안을 적극 모색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