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 광양시 정의당 여성위원장

▲ 이경자 광양시 정의당 여성위원장

1948년 10월 19일 사건을 두고 어떤 이는 여순사건, 14연대 반란사건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여순항쟁’이라고 불렀다. 올해로 70주기를 맞이할 때까지 여순항쟁은 왜곡과 편견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학문연구에서는 금단의 주제였으며 지역사회에서조차 여전히 대립과 반목이 지속됐다.

그러나 일곱 번의 강산이 변하면서 잘못된 역사 이해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할 근거의 틀이 있다면 언제라도 수정하고 변경되어야 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식이 대두되었다(주철희, 2017,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이에 따라 왜곡된 한국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해 전남 동부지역(여수,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여순항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발족했다.

나는 여순항쟁 광양실무위원으로 ‘여순 10.19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에서 국민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여전히 ‘반란’에 대한 인식이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젊은 세대들은 여순사건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서명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 성격이 모호하다고 여기는 10월 19일의 그 사건을 ‘항쟁’으로 정명할 수 있도록 하는 홍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실무위원으로 일하면서 지나간 과거사를 굳이 들춰내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왜 시간을 낭비하느냐 등의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적당한 답변을 찾아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한 답변보다는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억울함이 치솟아 올랐다.

생각해보면 그 억울함은 일본 성노예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허스토리’와 ‘아이 캔 스피크’ 그리고 이경신 작가의 ‘못다 핀 꽃’이라는 책을 읽을 때도 느꼈었다. 어디 그뿐인가? 인천 월미도 이야기였던 강변구 작가의 ‘그 섬이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원하지 않았던 억울한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국가가 나서서 대변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감춰두려고 했던 이들의 과거를 역사로부터 끄집어내어 현실과 대면하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 ‘허스토리’에서는 1992년부터 할머니들이 일본을 오가며 소송을 진행하고 일부 승소를 할 수 있도록 도운 여성 사업가의 물적, 정신적 헌신이 있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할머니의 영어를 가르치며 승진 시험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으로 날아간 젊은 공무원이 있었다.

그리고 ‘못다 핀 꽃’에서는 1993년부터 5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하며 그들을 치유하고 전시회를 열도록 도와준 미술 교사가 있었다.

‘그 섬이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에는 수많은 전쟁의 상처와 미군의 주민폭격으로 인한 민간인의 죽음, 살아남았으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 역시 무고한 희생자들을 대변해주며 월미도 귀향대책본부를 만들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그래야 한다. 여순항쟁의 중심이 되는 전남동부 지역 시민들이 나서서 이들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 성노예제 할머니들을 도운 사업가나 5년 동안 미술 교사로 함께 하며 할머니들의 아픈 상처를 치료했던 미술 교사와 똑같은 희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직도 규명되지 않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할 수 있도록 10.19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 여순항쟁에 대한 기록과 강연에 참석하여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잡은 과거를 통해 평화와 비폭력을 전제로 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동참할 때 이들이 진정으로 받고 싶어 하는 사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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