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준의 별 이야기_148

▲ 정호준 광양해달별천문대 관장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생물 진화를 연구하는 유일한 수단은 화석에 의한 구조비교 방법이었습니다. 새로운 화석이 발견될 때마다 새로운 논쟁이 뜨겁게 일어나고, 생물의 계통도가 수정되고 보완되어왔습니다. 이 방법의 어려움은 화석이 아주 드물게 조금씩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접근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분자 자체에 주목한 ‘분자진화론’이 그것입니다. 화석 대신 분자의 구조를 조사하면 그 진화의 과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자는 DNA 분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물은 유전자를 복제함으로써 종을 보존합니다. 생물 체내의 모든 세포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손이 비슷한 모습과 성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유전자 정보는 DNA라는 물질로 존재합니다. 이 DNA는 자신과 동일한 DNA를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약간 잘못 복제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분자 수준의 돌연변이 입니다. 잘못 복제된 DNA 정보에 의해 태어난 자손은 어딘가 모르게 부모와 달라지게 됩니다. 사실은 이 돌연변이가 생물진화인 것입니다.

분자 수준의 돌연변이에 주목해, 인류와 침팬지 등, 2종류의 생물이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분기 되었는지를 조사하는 방법이 1960년대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분자시계법’이라 불리며, 이치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화석 연구를 통해서 분기된 연대를 잘 알고 있는 2종의 생물의 유전자를 비교해보면, 오래 전 시기에 분기된 생물들일수록 서로 다른 염기의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염기의 변화는 발생하는 속도는 거의 일정하므로, 서로 다른 염기의 수를 조사해보면, 2종류의 생물이 분기한 시점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DNA의 변화량을 변화속도로 나누어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입니다.

현대의 인류유전학자들은 인류의 기원과 이동, 인종 혹은 민족 집단의 형성 등 근원적인 문제를 밝히는데 이 분자시계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쌍으로 이루어진 염색체는 기본적으로 부와 모의 유전 계통이 서로 섞이게 되는데,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보다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 또는 모 중 어느 한쪽으로만 유전되는 유전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 밖의 세포질에 존재하기 때문에, 난자를 제공하는 모계로만 유전되며, 핵막으로 보호받는 다른 유전자에 비해, 돌연변이가 왕성한 수준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를 조사하면 매우 손쉽게 인류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세포핵 속의 DNA는 량이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부와 모 양쪽에서 물려받은 DNA가 혼재해 있어서 분석하기가 너무 어렵고 복잡한데 반해, 세포핵 밖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는 DNA는 핵 DNA의 0.01% 정도로 적을 뿐 아니라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므로 관계 추적도 훨씬 간단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분자시계법은 주로 미토콘드리아 DNA 분자를 분석해서 지나온 시간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새롭게 밝혀진 인류의 진화 역사는 당시의 정설을 뒤집는 충격이었습니다. 당시까지 1천만년 이상이라고 알려졌던, 인류와 침팬지의 분기가 불과 500만년 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분자시계법에 의해 밝혀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변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유인원에서 긴팔원숭이가 분기한 시점이 대략 1300만~1100만년 전이고, 이어서 오랑우탄이 1000만년~900만년 전 분기됐으며, 그리고 불과 500만~400만년 전에 인류와 고릴라, 침팬지가 분기 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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