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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10·19사건’은 광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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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6  09: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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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용 변호사

올해는 여순10.19사건 70주년이 되는 해다. 제주 4.3사건에 진압출동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군인들이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순천방면으로 총구를 돌린 것이 1948년 10월 19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여수, 순천, 구례, 광양 등 전남동부지역 무고한 주민 1만 1131명이 죽음을 당했다(1979년 전남도 집계)

이 사건은 오랫동안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다. 왕조시대도 아니고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반란’이라는 용어가 버젓이 사용된 것도 우습지만,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한 양민학살중지, 단독정부 수립반대, 민족통일 등 구호를 내세운 제주도민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거부한 것을 반란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에는 ‘여순항쟁’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명칭을 무어라 하건 이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의 실체를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여수에서 거병하여 순천으로 향한 14연대 군인들은 이내 막강한 화력을 지닌 진압군에 밀리게 된다. 여수, 순천에서 광양, 구례, 고흥, 보성 등 흔히 ‘동부6군’이라 부르는 지역으로 진출하였던 이들은 진압군에 쫓겨 급기야 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산은 전투를 위한 곳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버티는 고립의 공간이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산사람들은 야음을 틈타 산에서 내려와 먹을 것을 챙겨가야 했다. 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때론 그들이 든 총이 무서워서, 때론 그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으나마 곡식을 내어준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경찰과 군인이 들이닥쳐서 어젯밤 ‘반란군’이 다녀갔음에도 신고하지 않은 사람, 먹을 것을 내어준 사람, 또는 길을 안내해 준 사람을 색출한다.

밤과 낮으로 극명하게 갈라진 이 야만적 생존공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견디지만, 어떤 이는 평소 감정이 있는 사람을 제거하는데 이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경찰과 군인들이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반란군’을 색출한다며 윽박지르는 틈에 겨드랑이 아래 감춘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기만 하면 그 사람의 목숨은 그날로 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공을 세워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욱 발호하였고 “어느 동네 반란군이 많다”는 제보 한 마디에 마을 사람 전부가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죽어간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 국가공권력이 안보 내지 치안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행한 폭력 앞에 양민들이 덧없이 죽어간 것이다. 국가는 ‘반란군’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대신 주민들을 ‘잠재적 반란군’으로 낙인찍어 제거하는 데 더 혈안이 되었다. 당시를 경험한 어르신들 대부분이 ‘반란군’보다 군인들이 훨씬 많은 주민들을 죽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1948년 10월 19일 이래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이념대립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어낸 이 지역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을 안고 살아 왔다. 그렇게 70년이 흐른 것이다.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되었다. 이런 살육의 역사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니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 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구술을 채록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써 나가야 한다. 사건 당시 20세였던 분이 지금 90세가 되었으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제주4·3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회복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를 이루어 가고 있듯이, 여순10·19사건도 특별법 제정을 통해 더 늦기 전에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여순10·19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당의 김태년 정책위 의장도 여수MBC 특별기획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환영할 일이다.

여수,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다 마찬가지이지만, 광양 역시 백운산에 숨어든 산사람들의 숫자가 많았고, 그 영향으로 학살당한 양민의 숫자도 많았던 곳이다. 광양에서도 여순10·19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크다. ‘여순사건’은 광양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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