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철 기자

온 몸에 석유를 끼얹고 라이터를 건 뒤 그는 평화시장 앞을 내달렸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작은 외침이 적막 속에 잠긴 평화시장을 가득 메웠다. 아니, 분노와 울분이 시장골목을 휘돌았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자그맣던 그의 몸은 3분여 타들어 갔다. 근로기준법을 품에 안고 쓰러진 그의 몸을 화염이 휘감았다.

1970년 11월 13일, 그날은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눈을 감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열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몸에 스스로 불을 놓아 부당한 자본의 착취에 입을 닫고 노동의 권리를 빼앗은 채 노동만을 강요하는 세상과 정권에 불을 놓았다.

피 맛을 본 거대한 공룡 같은 자본의 온갖 협박과 억압, 착취를 당하면서도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노동자의 가슴에 불을 놓았고 그 불은 또 번지고 번져 들불이 됐고 희망이 됐다. 그의 분신이 소식이 알려지자 침묵하던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를 메웠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은 외침이었으나 그의 뒤를 따르는 목소리는 함성이었다.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가난한 노동자의 맏아들. 초등학교 4학년 중퇴자, 신문팔이, 삼발이 장사에서 의류공장 재단사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스물 두 살의 청년 전태일이 죽은 지 올해로 48주년을 맞는다.

노동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든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청년 전태일의 꿈이었다. 그리고 48년이 흘렀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그의 마지막 유언을 다시금 새기는 이유는 여전히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는 노동의 현실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아직 그의 유언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나 노동자를 기업경영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본의 시도는 한국사회의 이면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움직인다. 달리 많은 수사와 논리를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 이유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노동이 자본에 복종하는 구조가 착취에 쉽기 때문이다. 노동을 기업경영의 또 다른 주체로 인정하는 순간 이러한 착취구조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과 함께 국내 대기업 중 30년 동안 무노조 경영체제를 유지하던 포스코에 새로운 노조가 설립됐다.

그동안 포스코 노동자들은 80년대 말 민족포철노조가 당시 안기부 등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사측의 방해로 해산된 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조차 빼앗긴 채 노경협의회라는 기형적 노사관계를 강요받아 왔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노조정상화를 위해 움직이던 몇몇 노동자들은 해고되는 아픔을 맛봤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현재 역시 포스코 새노조 설립을 두고 부당노동행위나 특정노조가입 유도 등 여러 의혹과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노동조합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이지만 금속노조 포스코 분회를 바라보는 포스코 경영진의 시각이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이유다.

대화의 우선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불법임이 명백한 노동조합의 문제에 개입시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라야 제대로 된 대화와 협의가 가능하고 정상적인 노사관계 정립과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될 토양이 다져진다.

근로기준법조차 인정하지 않는 자본과 부당한 국가권력에 항거해 스스로 불꽃이 된 노동자 전태일, 노동자가 스스로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때 그의 외침은 48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 이 말은 곧 노동자를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자본에 대한 질책인 동시에 노동자 스스로에 대한 채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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