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수 킹스크리스찬스쿨

▲ 정찬수 킹스크리스찬스쿨

가을이 되고 날이 추워질 즈음, 나뭇잎들은 하나씩 빨간 옷을 챙겨 입고 떠날 준비를 한다.
빨간 나뭇잎들 속에 노오란 민들레를 닮은 꽃은 계절을 잊은 꽃처럼 가는 가지에 달려있어 누가 봐도 특별해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땅에서 꺾은 노란 꽃을 나뭇가 지에 묶은 나는 지금과 달랐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가 빨간 옷을 입은 단풍이 되어 가지에서 떨어지려 할 때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 떨어질 참이었던 때가 있었다. 매달아 꿈쩍 않는 노란 꽃과는 다르게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누구나 겪는 사춘기라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남들처럼 부모님께 조금씩 반항도 하고 세상에 푹 빠져들었다.

안 하던 공부는 미련도 없었고 그저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지만 주위 친구들과 비슷했기에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나는 빨간 옷을 입고 떨어지려고 하는 친구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은 단풍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 라는 빨간 잎 하나를 가지에서 툭 떼어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재미없는 일에 빠지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훨씬 즐겁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 를 떼어내는 그 힘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다. 동해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먼 곳으로 떠나온 것이다.

‘늑대소년’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늑대 사이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이 구조를 받고 나서도 늑대처럼 행동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결론은 죽거나 적응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나도 이와 같이 빨간 잎 사이에서 누군가에 의해 노란 꽃 무리로 들어갔을 때 정말 힘들었다. 무너지거나 적응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정말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곳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으로 생각되었고 선뜻 포기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었다.

힘겨워 주저앉으려 할 때 주변의 노란 꽃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도움을 주려 손을 내밀기 시작 했다. “조금 더 해보자, 파이팅!”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누구보다도 진한 빨강의 옷을 입고 있던 나는 차츰 노란 옷으로 갈아입게 되었다. 그 결과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사와 한자, 토익, 그리고 컴퓨터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미래를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노랑이 된지난 시간의 과정은 내게는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고 감사함이었다.

우리 외할머니는 며칠 전 빨간 잎들을 바꾸며 사시다 영원한 안식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나’라는 빨간 잎을 노란색으로 바꾸신 것처럼 말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예전에 빨간 옷을 입은 내가 보였지만 색이 바래지는 것처럼 지금은 완전히 노란색 옷 밖에 없는 스스로를 보고 있다.

외할머니께서 하신 대로 나도 남들을 살리는 인생을 살고 싶은 소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께서 보여주신 그 답에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꼭 나처럼 꿈이 없고 답이 없는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끌어주고 싶다.

그동안 나는 잎에서 꽃으로 변화되고 빨강에서 노란색으로 갈아입었다. 계절의 배턴에서 나는 이제 다시 빨간 잎들 사이로 가려고 한다.

아직도 완벽히 성장하지 못했기에 그 속에서 살아 남으며 그들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를 빨간 잎들 사이에서 옮겨 준 ‘그’는 나를 돕는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날 옮겨준 그와 함께 빨간 잎들에게 답을 주러 갈 것이다. 남은 3개월, 그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노란 꽃들 사이에서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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