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일흔 살을 다른 말로 종심(從心)이라 하는 것은 이 나이가되면 마음가는대로 살아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나이의 가르침 일까? 나에게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말과 글을 어린 시절 손가락 길이만큼 뼘을 재 땅따먹기를 하듯 그저 나의 분수에 맞게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며 노년의 안온함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 욕심을 냈다면 유시민의 “무언가를 새로 알게 될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범재(凡才) 이어도 남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즐거움“ 정도를 소망하며 살았다.

칠순기념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다녀오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
세 노인』의 알란칼손 노인이 100세 기념식 참여를 거부하고 창문을 넘어 도망쳐 세계사의 주요 순간을 끼와 긍정적인 신념과 약간의 요행으로 공중 줄타기를 하듯 자충우돌 시간가는 줄 도 모르고 용감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뒤, 요즘 『감 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의 77세에서 80세의 다섯 명의 늙은 악동들이 “거의 언제나 꿈은 이루어진다” 거나 “하루 범죄 한건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며 <하늘을 나는 새처럼 즐겁게>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무료와 속박을 피해 감옥에라도 가겠다며 모의하는 것을 보고 가당찮은 객기가 나에게도 발동한 것 같다.

더구나 스웨덴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되는 사회복지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사실에 배알도 났는가보다.

국론이 분열되고, 차별과 갑질, 질시와 반목, 절망과 자살,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이놈의 세상을 한방에 바꾸는 통쾌한, 정말로 통 큰 담론은 없는 것일까? 가을하늘이 높고 너무 맑은 탓인가. 70의 나이에 소년 같은 꿈을 꿔본다.

‘주님의 종’에서 ‘생각하는 갈대’가된 인간이 혐오와 오만의 껍질을 깨고 모두가 자기 인격성의 절대적 가치와 존엄을 스스로 깨달아 진정한 이땅을 책임질 주인이라는 자존감을 가져보면 어떨까?

슬기로운 조상이 찾아냈으나 서학(西學)때문에 뿌리친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그 심연에 인간의 자존적 소명의식을 말하고 있다.

자비하신 석가께서 아수라장 같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위해 외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혼자만의 말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뜻은 아닐까?

최고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사랑이라면, 내가 너고 너 또한 나라면, 자존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한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된 본성을 보존하여 자신을 완성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화육(化育) 된다”는 중용의 가르침 또한 자존을 말하는 듯하다.

인류사에 있어 소중한 성취는 그 서사에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한 자존감의 실행이 존재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풀릴 듯 하다가도 엉키는 작금의 남북문제 또한 우리민족의 자존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한다.

동족상잔의 아픔이 크기에 우리는 더욱더 더불어 번영하고 행복해져야한다는 당위성을 갖는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 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나는 요사이 그 반대의 현상을 소망해본다. 활자와 한글과 거북선을 발명하고 어느 민족보다 선명하게 별자리를 그려낸 민족임에도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지 외침과 내환으로 고생해온 이 민족에게 인류사에 귀감이 될 웅비의 새 역사가 도래하고 있다는 믿음에서다.

이제 그 미징이 선명하게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자연의 재해가 심한 민족은 신에 의존하지만 인간에 의해 환란을 많이 격은 민족은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경천동지의 영웅이 아닌 국민 곁에서 고락을 같이하며 국민의 아픔을 다독여 주고 낮은 목소리까지도 소중히 듣고 지혜로 모아주는 그런 지도자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런 지도자를 구별하는 국민적 지혜가 깨어나고 있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고마운 지도자가 나타났고, 제2, 제3의 지도자가 태동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하나의 현상은 처음이 열리면 봇물처럼 터지는 경향이 있다. 평화와 공존을 지향 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동남아로, 교황청으로, 유럽연합으로 우주 에너지의 공진(共振)을 받아 힘차게 뻗어 나갈 것이라 확신해본다.

내 몫만큼의 자존을 생각하며 몸이 줄어 헐렁해진 양복임에도 정갈하게 차려입고 시선을 똑바로 하고 가슴을 펴고 당당한걸음으로 대문을 나선다.

미소 띤 얼굴로 마음속으로나마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꼭 행복하자고 빌어본다. 나눌 것이 많이 부족해도 ‘뚤방의 헌신짝도 많을수록 좋다’는 조상들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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