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문학 작가들이 전하는 광양이야기-1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이미옥 까치문학 작가

윤동주의 시‘별 헤는 밤’의 첫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가을 빛 오후에 남편과 드라이브에 나섰다. 목적지는 지난겨울 끝자락에 방문했던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다. 가을을 머금은 바다도 가는 길에 함께 했다.

망덕 포구 초입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배알도와 포구를 잇는 다리가 보인다. 절반 정도 연결된 다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교의 이미지 보다는 조그만 구름다리처럼 앙증맞다. 벚꽃이 만발한 봄날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바라보는 망덕포구는 바다를 도화지 삼은 그림이었는데 또 다른 느낌이다.

‘전어 축제’의 장소인 만큼 왼편으로 즐비한 수족관에는 은빛 비늘을 휘감은 전어 떼들이 가득 차 있다. 한참 물오른 대하, 실한 고둥들, 통통 튀어 오르는 홍가리비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지나치기 쉬운 소박한 곳에 오늘의 목적지가 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점포식 가옥인 건물 처마 밑에 붙어있다. 마음먹고 찾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곳에…. 쉬이 눈에 띄지 않는 이곳이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이 발견된 장소이다.

지난 방문 땐 아이들과 함께여서 주말에만 근무한다는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조용한 흔적만이 우리를 맞았다. 살림집과 양조장이 함께 붙어 있는 독특한 건물 양식으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널빤지 몇 개가 뜯겨진 마루가 보인다. 부드럽고 깔끔한 시인의 필체를 볼 수 있는 시집과 육필원고도 눈으로 들어온다.

윤동주 시인과 연희 전문대를 함께 다녔던 정병욱 선생은 친구의 육필원고를 이곳 본가에 맡겼다. 일제 말기라 모든 게 조심스러웠을 그 당시에 정병욱 선생의 어머니는 널빤지를 뜯고 항아리에 원고를 넣어 마루 밑에 묻었다.

징병에서 돌아온 정병욱 선생은 윤동주 시인이 일본 유학중 옥사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신의 호 백영(白影)을 윤동주의 시‘흰 그림자’에서 따올 정도로 깊은 우정과 글을 나눴던 선생은 그의 유고 시집 출간에 온 힘을 쏟았다. 사그라진 그가 다시 빛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었던 건 정병욱 선생의 애정어린 노력 덕분이었다.

▲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가옥 옆으로 즐비한 표지판에는 빛바랜 사진 속에 함께 선 시인과 선생 그리고 정병욱 선생의 집안 내력들이 설명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꽤나 있다. 그들의 추억에 잠겼던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조그만 포구가 시야에 들어온다.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척박한 대지에서 자란 시인과 풍요로운 바다에 안겨 자란 정병욱 선생. 너무도 다른 두 청춘은 연약한 조국을 꿋꿋이 사랑했다. 그래서 일까? 학창시절 민족시인의 시들은 사랑을 속삭이는 연애시 같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시들은 한창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청아한 감상의 시들이 민족과 독립을 노래한 시라는 걸 수업 시간에 알았을 땐 이내 다 알 수 없는 묵직함을 안았다. 고작 스무 살 초반의 청년이 그렇게 애절하게 조국을,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건지….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별 헤는 밤’초고를 본 정병욱 선생이 “어쩐지 좀 허전한 느낌이 드네요.”라고 말했더니 시인은 후에‘별 헤는 밤’의 끝에다 마지막 넉 줄을 덧붙여 그에게 보여 주었다. 낮은 소리로 덧붙인 마음을 읊조린다. 시인의 시를 품었던 바다가 가을 햇살 따라 반짝인다. 그의‘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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