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킹스 크리스찬 고등학교 2학년)

▲ 이시은(킹스 크리스찬 고등학교 2학년)

“야 코스모스 길에 제일 늦게 오는 사람 아이스크림 사는 거다!” 매일 동천의 자연을 감상하다보니 오늘은 내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우리들은 별것도 아닌 일에 승부욕이 불탄다. 동천을 가기 전 선생님의 “5분 준다.” 라는 말씀을 하시자 마자 한국의 우사인 볼트들이 계단을 뛰어간다. 갑갑했던 교복을 냅다 던지고 빨지도 않고 쑤셔놓았던 체육복을 집어 들고서 말이다. 텁텁하면서 찌든 내가 슬금슬금 올라오지만 주어진 5분이라는 시간에 늦어선 안 된다.

‘헐레벌떡’ 자전거를 잡고 페달을 밟는다. 너무 급하게 서둘렀기에 신발 끈은 풀어져 있다. 26명의 학생의 기고만장했던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동천으로 향한다. 동천에 도착하기 전 나는 가장 두려워하는 길과 또 다시 만나야 한다. 그곳에서 5번 넘게 휘청거려 보았기에 그 구역에만 오면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우는 상상을 한다. 놀이기구를 탈 때보다 더욱 긴장되는 이 순간, “제발 제발”을 외쳐대며 손잡이를 꽉 부여잡는다.

이 구역이 지나면 가장 좋아하는 코스모스 길이 나온다. 어제 운동길에 코스모스를 보며 내일도 오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더욱 설레며 발길질을 한다. 그런데 ‘이럴 수가’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1코스, 코스모스길 바로 앞까지만 타야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저 앞에서 들려온다.

생각지도 못하게 코스모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탓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강가에 둥둥 떠 있는 청둥오리들이 보인다. 오늘은 코스모스가 아닌 청둥오리들에게 내일도 꼭 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면 우리는 아침밥을 먹고 동천으로 축구를 하러 간다. 축구화와 축구양말을 신고 나온 사람은 우리들밖에 없다. 빨강 팀과 파랑 팀이 나뉘어 경기를 시작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뛸만한 경기장에 반에 반도 안 될 만한 크기의 잔디밭이지만 우리들의 승부욕은 국가대표에 버금간다. 경기 규칙은 여자만 공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거의 공격수로 올라간다.

사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아침마다 축구를 하다 보니 축구의 재미를 맛보게 되었다. 나에게 공이 오는 순간 나는 최면을 건다. “나는 호날두이다.” 호날두가 나의 모습을 보면 웬 동네 아줌마가 축구를 하는 줄 알겠지만 나도 우리 팀 내에서는 호날두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 오늘도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패스를 받고, 있는 힘껏 공을 찼지만 발을 잘못 갖다 대었다.

공을 놓친 순간 월드컵 경기를 뛴 것 마냥 아쉬워하며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다음 기회를 노리며 공이 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나에게 기회가 왔다. 우리 팀의 에이스가 나에게 패스를 해준다. 골대 앞에는 골키퍼뿐이고 상대 수비수는 모두 공격수로 올라갔다. 공이 잔디를 타고 나에게 온다. 아까의 실수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더 힘 있게 공을 찼다.

“골!” 저 멀리서 우리 팀의 환호가 들린다. 그제야 골을 넣은 것을 확인 한 나는 중간고사 백점을 맞은 것 보다 더 기뻐하며 친구에게 폴짝 안긴다. 이 순간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하다. 친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입 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웃음이 난다.

나의 ‘낙’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된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 아닌 하나씩 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 선물은 무엇을 받아도 기분이 좋은 것처럼 매일 나에게 낙 이라는 선물을 찾아 주는 것이다. 동천에 갈 때 코스모스에게 인사를 해주며 나의 낙을 찾고 축구를 할 때, 골을 넣은 기분을 즐기며 낙을 찾는 것처럼. 또 다른 나의 낙이 있다면 작곡을 하고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있다. 나는 매일 낙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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